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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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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참교육}} {{승리}} {{화재}} {{반미}} [[파일:제너럴 셔먼호.jpg]] == 개요 == 1866년 7월 25일 [[천조국]]의 무장 상선이던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타고 평양으로 거슬러 올라가 통상수교를 요구하며 대포를 쏴대며 민간인들을 학살하자 1866년 9월 5일 평안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군이 배를 불태우고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 사실 [[제국주의|이 시절]] 서구 열강들이 이런 식으로 [[운요호 사건|전세계 약소국들에게 수교를 요구하다가 거부하면 깽판치는건]] 일종의 유행이었다. 그나마 아시아는 [[청나라]]가 대빵먹고 관할구역으로 쥐고있었는데 그 청나라가 [[대영제국|어느 섬나라]]에게 [[아편전쟁|후장까지 털리면서 맛탱이가 가버려서]] 본격적으로 아시아 약소국들을 쑤셔대던 시절이었다. 근데 그렇다 쳐도 제너럴 셔먼호는 군함도 아닌데다가 안에는 일반 상인들 주제에 대포를 쏴대며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건 말이 상인이지 사실상 [[해적]]놈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해적이기 때문에 진압하지 않을수가 없잖아? 게다가 당시 이미 [[흥선대원군]]이 [[병인박해]]로 서양 선교사들을 학살한 상태라서 [[프랑스]]가 보복하러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자체가 양놈들한테 잔뜩 긴장한 상태였는데 이지랄을 했으니 당연히 바로 군대가 나서게 된 것 == 결과 == 이 사건과 더불어 바로 연이어 같은해에 [[병인양요]]까지 발생해서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조선인들의 양놈들에 대한 반감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물론 이 사건 이후 [[신미양요]]로 개처맞듯이 처맞게 되었다. == 제너럴 셔먼 그 이후 5년 == [[병인박해]]가 일어난 당해에 [[병인양요]]가 일어난 것에 비해 [[신미양요]]는 대응이 어마어마하게 느린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 당시 1866년은 [[남북전쟁]]이 끝난지 고작 1년밖에 안된데다가 [[에이브러햄 링컨|천조국 머통령]]이 암살당한지 1년밖에 안되는 천조국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운 시대라 동양의 좆만한 동네에서 일어난 해적질에 대해 대응할 처지가 못되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었다. * 웬 듣보 상선이 조선에 와서 깽판 * 침몰 * 남북전쟁 뒷처리하던 미국은 이걸 알지도 못함 * 우연히 이 사건을 주워들은 미국 * 조선에게 물어본다(1867년에) * 조선: 아 미국 ㅎ 니네가 보낸 애새끼들 다 뒤짐 ㅎ * 미국: 아니 청나라야 니네 따까리 관리 제대로 안해???? * 청: 아 걔네 우리 나와바리 아님 ㅎ 걔네 독립국임 걔네한테 따지셈(벌써 1869년) * 조선을 존나 공부하는 미국(2년 동안) * [[신미양요|자 드가자~]](1871년에 드디어) == 여담 == *사실 이 지랄은 [[미국|천조국]] 국가차원에서 계획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민간상선 제너럴 셔먼호 단독적으로 해적질하다가 참교육당한거였다. 그러니 반미충들은 이걸로 선동질 ㄴㄴ 실제로 당시 대통령도 이 사건 후 이틀 후에야 이 사건의 존재를 보고받았다고 한다. *당시 천조국은 조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청나라에 붙어있는 청나라의 속국정도로 인식해서 [[청나라]]에게 이 사건을 항의했는데 청나라가 "걔들 우리 관할 아닌데? 직접 가서 따지셈 ㅅㄱ링~"이라는 답변이 돌아와서 조선이 당시 서구 열강들에게 아시아 초강대국으로 인식되던 청나라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초강대국으로 오해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조선에 대해 염탐하며 정보수집하는데만 3년이 걸렸고 첩보 결과 초강대국은 무슨 개좆밥 약소국임을 알게되고 바로 쳐들어오게 된다. *사건이후 하응이는 침몰한 제너럴 셔먼호를 인양해서 복제를 시도했고 머부분 성공했었다고 한다. 다만 조선은 증기기관 따위 다뤄본적이 없는지라 [[석탄]]이 아니라 [[숯]]을 사용해서 가동해서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고 결국 상용화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외외로 하응이가 외국과 통상은 맺기 싫었는데 서양기술에는 관심이 많았나 보다. 더불어 망상 좀 하자면 [[운요호 사건]] 때 까지 이 배들을 잘 다뤄서 전투에 투입했다면 아마 이때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북조선에서는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옌이 제너럴 셔먼호의 미제승냥이들을 쓸어버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지만 당연히 구라이고 박규수와 백낙연이 총책임자였다. * [[박규수]]가 이 사건을 지켜보았다. 마치 일본에서 [[쿠로후네 사건]]을 유신지사들이 직접 지켜봤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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