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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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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로트링겐 가문의 시조== 이 여자 대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가 단절되고 남편인 프랑수아 에티엔 로렌 즉 프란츠 1세의 로트링겐 가문으로 왕조가 교체되어야 하겠지만.<br/> 문제는 로트링겐 가문은 듣보였다. 결국 반 데릴사위 처럼 되어버려서 합스부르크에게 먹힌셈... 이 남자와 이 여자의 아들은 오스트리아 제위를 받을게 뻔하고. 동시에 로렌(로트링겐)영토까지 상속받을수 있는데, 알자스 로렌은 1648년 30년 전쟁 종전으로 신롬에서 프랑스가 전리품으로 빼았아온 영토였다.알다시피 유럽 중근세사는 프랑스 동진(신롬침공)을 막기위해 나머지 유럽국가들이 미친듯이 개극딜하는 역사였기 때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결혼 한방으로 어렵게 얻은 영토가 날아가니 프랑스로서는 미칠지경.고로 이렇게 되면 다시 신롬에게 총알한방 안쏘고 반환되는 셈이고, 프랑스는 자국 영토에 철천지 원수인 합스부르크 본토랑 맞대는 동네가 하나 느는 셈이 된다. 이에 따라 마누라가 3국분할로 처묵해서 다스릴 나라가 날아가 버린 폴란드 왕에게 대신 로트링겐을 줬다가 폴란드 왕이 사망하면 다시 프랑스로 반납하기로 합의한다.고로 결혼대가로 고향까지 프랑스 왕한테 줘야했다. 안습. 그 대가로 처가한테 이탈리아 토스카나 대공국을 영지로 받긴했지만, 고향을 잃어버려서 많이 서운해 햇다고 한다. 그래도 저 옜날에 유럽왕족 치곤 특이하게도 연애결혼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먼저 썸을 느꼈고 양가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져 정식으로 결혼했다.<br/> 금술이 노무 좋아서 자식을 16명이나 낳았는데 그중 한명이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11녀) 걔가 프랑스에 시집가서 마리 앙뚜아네트가 되었다.<br/> 그녀는 시집간 딸들에게 남편을 공경하고 남편말을 잘 들어라는 그 시대에 당연한 상식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녀가 실천을 안했다. 왜냐하면 혼수로 신성로마제국 제관을 해갔기 때문이다...심지어 왕위계승 전쟁때 남편이 딱 한번 정치전면에 나서서 강화회담에 임했는데, 이 여잔 커튼 뒤에 몰래 숨어있다가 자기 마음에 쪼금이라도 협상내용이 맘에 안들면 엣헴엣헴 거리면서 남편을 압박했다. 그럴거면 왜 숨어..??? 그러나 이후부터는 물론 프란츠 1세는 마누라 하자는대로 다 해야 하는 신세로 되돌아가서 평생 정치에 손을 안 댔다... 별수있나 듣본데... 그래도 합스부르크 뒤에 로트링겐을 적을수 있게되어 존재감을 오늘날까지 알리게는 되었지만 너무 길어서 그냥 합스부르크로 써버리고 만다. 특히 머한. 안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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