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영락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찬탈 == 결국 태조의 뒤를 이은 황제는 태조의 장남인 의문태자의 아들인 [[명혜제|혜제]]였다. 즉 태조의 장손. 혜제는 나라 다스리는 데 장성한 삼촌들이 성가셔 정치적 실권을 하나 둘 빼앗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왕야 신분의 삼촌들의 모가지를 하나 둘씩 썰어제꼈다. (다만, 건문제는 후술하듯이 숙청에 소극적이었고, 총신인 방효유가 주로 주동햇다.) 결국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잘못도 없는데 단지 왕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는다는 게 너무 억울해서 황제 곁의 간신을 처단한다는 명분하에 난을 일으켰다. 처음엔 세력이 훨씬 큰 혜제 측이 유리햇지만, 정치적으로 제거를 할지언정 숙부를 죽엿다는 비난은 피하고자 햇던 혜제가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동안 주체는 세력을 제정비햇고, 거기에다 전대 태조 시절에 박해받던 [[환관]]들한테 우대할 것을 약속하고 내통에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난징에 있는 황궁을 포위했다. 이에 혜제는 남징 궁성을 소각해버린다. 결국 혜제 일족이 전부 증발해버렸고 발견된 건 혜제의 마누라의 시체뿐이었다. 한편 주체를 족치라고 주장햇던 방효유도 잡아들이는데, 걔가 당대에 명성이 높아서 회유하려 햇으나 "조까 [[역적]]새꺄" 라고 까버리자 격분해서 구족(친가 / 처가 / 외가의 각 3대)을 몰살시키지만 그러고도 말을 안 들으니 마지막엔 그와 친분이 있던 선/후배 등을 죽여 "십족"을 채우지만 그러고도 말을 안 듣자 그제서야 처형한다. 이렇게 되자 주체는 자기가 황제가 된다. 그리고 기왕 부셔진 황궁 새로 짓긴 해야겠는데 더 좋은 곳에 짓자며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고 거기에 새로운 황궁을 지었다. 중국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영락대전을 만듬.(나중에 전쟁 일어나고 중국 대륙이 혼란스러웠을때 거의 다 없어짐) 전체적으로 정치는 잘 햇지만, 이 새기가 찬탈 후 약속대로 곶아들을 우대하고 적극 이용해먹는 바람에 환관 조직인 '동창'이 너무 비대해져 명나라 정치를 막장으로 몰고 간다. 여러모로 조선의 [[수양대군]]하고 비슷한 포지션. 이방원이 그 영락제를 설득잘해서 조공 바치는 것을 조선이 흑자로 받아내게 만들었다. 역알못 새끼들이 '이방원은 영락제한테 공녀 바친 친중파'라고 해석하는데 애초에 이방원은 명나라를 통수칠 목적으로 섬겼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 당시 명나라는 지 말 안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해골을 가져가는 미친 국가인데 당시 조선의 힘으로는 싸워봤자 오히려 명나라한테 해골을 가져다주는 꼴이 된다. 정작 이방원은 명나라에 붙은 여진족들을 조져버리는 것에 앞장섰고, 이걸 갖고 명나라를 낚아버렸다는 것이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