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타테카와 단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영욕에 찬 그 생애 == === 입문 전까지 === 도쿄중학교 졸업하고 도토(東都)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1학년 때에 중퇴하고 5대째 야나기야 코산에게 입문했다. 중졸이다. 물론 [[정유라|헬조선 중졸 인지도 1순위]]나 [[야나기야 카로쿠|무려 버블경제 시대에 입문한 중졸 라쿠고가]]랑은 비교할 수 없다. 일제 패망후 아직 10년도 안 지났던 시기라 당시에는 중졸이 많았다. 라쿠고가가 딱히 고학력을 요구하는 직업이 아닌 것도 있고. === 협회 시절 초기와 쇼텐 초대 사회자 === 입문 11년차인 1963년에 신우치를 단다. 지금 기준이야 연공서열제라 [[야나기야 쿄타로]] 같은 슈퍼재능충이나 야나기야 카로쿠 같은 무적수저충이 아닌 이상 이렇게 빨리 달진 못하지만 당시에는 조금 빠른 정도였다. 뭐, 3대째 [[코콘테이 신쵸]](당시 코콘테이 쵸타)가 입문 5년차에 36명이나 제치고 초고속으로 신우치 승진을 하는데, 젊은 시절 단시 수령님이 저 36명에 들어가는 바람에 두고두고 이를 간다. 신우치로 승진하면서 타테카와 단시를 습명하는데, 5대째를 자칭한다. 사실 메이지 시대에 4대째에 해당하는 양반이 계보도 공부를 안했는지 자기가 초대인줄 알고 자칭한 걸 시작으로 바로 선대인 6대째가 또 족보를 꼬아서 4대째를 자칭하기에 이르기까지 족보가 꼬인거다. 족보 꼬인 것도 귀찮기도 하고, 5대째가 어감이 좋기도 하고, 스승인 쇼와의 대명인 5대째 야나기야 코산과 깔맞춤도 할 겸 그냥 5대째를 자칭하게 된다. 이 무렵 그 갓-방송 쇼텐을 구상해서 방송으로 만든다. [[요세]]에서 하는 오오기리(大喜利)를 방송에서 해보자라는 구상을 가지고 니혼 테레비의 기존 방송 금요야석을 가져다가 단시의 구상대로 포맷을 개혁한 것이 쇼텐이다. 초대 사회자이긴 한데, 극초기에는 연예 코너는 단시가 사회를 보고 오오기리는 5대째 엔라쿠가 사회를 보다가 단시로 통일 된 거다. 뭐, 쇼텐을 만들긴 했지만 수위 높은 블랙 유머를 즐겼던 양반이라 방송 제작진과 갈등을 겪었고, 결국 시청률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강판 당한다. [[친박]]과 [[킹]]의 관계랑 얼추 비슷하다. 물론 단시 수령님은 20세기 내내 쇼텐에 특별출연할 일 있으면 꼬박꼬박했다. 본격적으로 쇼텐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 21세기 들어서서다. 69년 정치를 하겠다고 중의원 선거 도쿄 제8선거구(중앙구, 분쿄구, 타이토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여기서 보기 좋게 낙선한다. [[공명당]] 지지하는 창가학회 광신도에게 피습당했던 것도 이 시절이다. 그래도 정치에 미련 못 버리고 71년도 참의원 선거 전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당시의 전국구는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전국구라는 선거구 따로 있었다고 보면 된다. 전국구 선거구의 정원은 총 100명이며 선거 한 번에 50명을 교체한다.) 여기서 당선자 50인 중 50위로 겨우 턱걸이를 성공하며 참의원으로 재기한다. 이 때 남긴 말이 '요세에서도 정치에서도 신우치는 가장 늦게 올라가는 법이다.'이다. 과연... 당선 직후 [[자민당]]에 입당한다. 우익 스탠스로서 참의원 재임기간 중 특히 공산당 극딜을 참 자주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 공산당]] 지지자인 [[하야시야 히코로쿠]](당시 8대째 쇼조)와 많이 싸웠다. 이 시절에 입문한 제자들이라면 대표적으로 10대째 도쿄테이 류바, [[타테카와 사단지]], 2대째 [[카이라쿠테이 블랙]]이 있다. === 산유테이 일문과의 협력, 그리고 라쿠고협회 분열소동 === 7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협회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단시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이 시기 이후의 행적에서 기인한다. 당시 협회에서는 신우치 승진에 대한 예능관을, 그리고 협회의 헤게모니 장악을 둘러싸고 두 명의 거물이 대립하고 있었다. 당시 회장인 5대째 야나기야 코산과, 전 회장이자 고문으로 물러난 6대째 [[산유테이 엔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야나기야 코산 회장은 신우치를 한 사람의 라쿠고가로서의 출발점으로 보았고, 그래서 신우치 대량승진을 지지했다. 반대로 산유테이 엔쇼 고문은 신우치를 라쿠고가가 추구해야할 궁극적 목표로 보았고, 그래서 신우치 대량승진에 반대했다. 타테카와 단시는 이 두 대명인의 대립에 자신의 스승인 코산 쪽이 아니라 엔쇼 쪽에 줄을 섰다. 엔쇼의 후원을 받아 친엔쇼파로서 상임이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자신의 예능관대로 굴러가지 않는 협회를 탈퇴하고자 하는 엔쇼를 5대째 엔라쿠와 함께 뽐뿌질을 하여서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을 일으킨다. 6대째 엔쇼 일문이 주도적인 위치에 서서 3대째 코콘테이 신쵸, 7대째 타치바나야 엔조 일문이 가담하여 '라쿠고 산유협회'라는 새 단체를 만드는 형식으로 라쿠고협회가 분열된 것이었다. 하지만 수령님은 그렇게 뽐뿌질 해놓은 주제에 통수 치고 참가 안했다. 애초에 단시 수령님의 목적은 신단체의 차기 회장 자리이고, 엔라쿠 이 양반은 정치를 좀 아는 양반이기에 단시 수령님 도움이 없으면 신단체가 잘 안 굴러갈 걸 알기에 차기 회장 자리를 주려고 했지만, 3대째 신쵸 쪽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엔쇼도 차기 회장 자리를 신쵸 쪽에 주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자, 단시 수령님은 통수 치고 입 싹 닦은 것이다. 다행히도 '라쿠고 산유협회'는 석정들이 두들겨 패서 삼일천하로 좆망했다. 하지만 스승님인 코산파와도 척지고 (세력이 와해되었다곤 하지만) 엔쇼파의 통수까지 쳐버린 단시 수령님은 협회에 설 자리가 급격하게 좁아져버렸다. 이 시점에서 수령님의 라쿠고협회 탈퇴는 이미 시간문제인 것으로, 탈퇴와 주체 타테카와류의 출범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 시절에 입문한 제자들이라면 대표적으로 [[타테카와 단노스케]], [[타테카와 단코]]가 있다. === 타테카와류의 이에모토 동지로 === 협회 분열소동이 수습된 이후 3년이 지난 1983년, 수령님 부재중에 수령님 제자 둘이 신우치 승진시험에 불합격하는 일이 생긴다. 반면 역량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던 하야시야 일문의 하야시야 겐페이가 합격한다. 이에 빡쳐서 수령님은 스승인 5대째 코산을 비롯한 협회 지도부에 격렬하게 항의했고 결국 라쿠고협회를 탈퇴하여 [[라쿠고 타테카와류]]를 창립, 이에모토(家元)의 옥좌에 오른다. 이에모토라는 독재관 자리에 등극하신 수령님은 혐성 본성을 드러내며 개꿀 유사 건물주 라이프를 살기 위한 상납금 제도를 제정한다. 즉, 자신의 직제자들은 자신에게, 사손(師孫)들은 자신의 스승에게... 하는 식으로 최종적으로는 자신에게 돈이 모이는 다단계적 수금 제도이다. 라쿠고계에서 대대로 이어져오던 미풍양속인 '위로부터 받아 아래로 갚는다'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짓이며, 굳이 즈언통을 안 들먹여도 삥뜯기다. 그리고 상납금을 더 걷기 위해 A, B, C 코스 제도를 제정하여 일부 유명인, 일반인들에게도 허울좋은 제자 이름을 붙여주고 입회금과 상납금을 뜯었다. 또 이에모토독재주의 주체락원의 유지를 위해 상납금 미납으로 파문당한 자가 용서받고 다시 일문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3개월분의 상납금을 벌금으로 내야했다. 어휴 시발 돈에 미친 혐성 수전노 새끼. 그리고 수령 동지께서는 라쿠고 산유협회가 석정들한테 두들겨 맞아서 좆망하는 걸 보고 처음부터 쿨하게 요세를 쌩까기로 작정한다. 수령님 본인이야 개런티 빵빵하게 받으면서 라쿠고회 하면 되지만 제자들은 요세도 못 나가면서 착취만 당하는 엠생 노예가 된거다. 타 단체의 제자들이 입문도 공짜로 하고 상납금도 안 내면서 가끔 적은 액수지만 용돈도 받으며 (엔라쿠 거르고) 요세에도 꾸준히 출연하면서 착실하게 라쿠고가로서 성장해가는 데 반하면 정말 가혹한 지위인 것이다. 무튼 그 이후로 제자들 골수 빨아먹으면서 라쿠고계의 김일성으로 살다가 염라대왕이 독재자를 [[참교육]]하는 해 중 한 해였던 2011년에 김정일보다 1달 앞서 죽었다. 물론 자식들이 라쿠고가를 안해서 세습은 없었다. 세습은 단시와 적대했던 5대째 야나기야 코산 일가(코바야시 가문)나, 같은 협회의 하야시야 산페이 일가(에비나 가문)이 심각하다. 사인은 헤비스모킹으로 인한 후두암. 라쿠고가가 목소리를 잃을 수 없다며 수술을 거절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시절 입문한 제자는 대표적으로는 개꿀잼 킹갓라쿠고가 [[타테카와 시노스케]]가 가장 입문이 빠르다. 협회 탈퇴 직전에 입문해서 요세 첫 공연 나가기 전에 단시 수령님이 타테카와류를 세우게 된다. 그 외에도 시노스케를 비롯한 타테카와 사천왕이라고 불리는 라쿠고가들은 다 이쪽 세대이다. 그 외에 희대의 실패작 타테카와 키위라던가, 단시 최후의 제자인 단키치도 당연하지만 이쪽 세대이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