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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전의 내용은 [[키루스 2세]]에 설명되어있으니 이쪽으로 갈것. 요약하면 키루스 2세가 리디아밀면서 이오니아 썰고난 뒤에 그리스도 썰릴뻔했지만 키루스가 신바빌로니아원정을 위해 철군하면서 그리스는 살아남았고 이후 페르시아가 여타원정, 내부혼란으로 인해 그리스를 건드리지 않아서 오랫동안 서로간의 물리적 충돌은 업었다. 그러나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제국의 혼란스러운 내부 정국을 수습하고 제국을 남동유럽까지 확대시키기 시작하자 그리스인들은 이에 대해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다리우스는 제국의 영향력을 흑해까지 확장시키기 위해 스키타이 부족들의 영역을 침공하였으나 스키타이인들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철군하였다. 이 때 그리스 세계의 주요도시인 아테네는 페르시아가 스키타이 침공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지금이야말로 페르시아 제국을 약화시킬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이오니아의 주요 도시인 밀레토스에서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그리스 본토에 사절단을 보내 왔다. 또다른 그리스의 강력한 도시인 스파르타는 밀레토스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지만, 아테네 민회는 이와 같은 요청을 받아들여 함선 20척을 보냈으며, 에레트리아같은 몇몇 다른 도시국가들도 밀레토스에 함선을 파견하였다. 이와 같은 그리스 본토로부터의 지원에 고무되어 이오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오니아 반란은 초기에는 성공적이어서 많은 이오니아 도시들이 페르시아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였고 그리스인들은 내륙으로 진군하여 과거 리디아의 수도이자 소아시아 서부지역 페르시아 사트라프(태수)의 정치거점인 사르디스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의 크고 묵직한 보복이 뒤따랐고, 결국 기원전 494년 라데 전투에서 그리스 함대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이오니아 반란의 진앙지인 밀레토스는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어 주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결국 이오니아 반란의 실패로 그리스 본토인들도 위기에 직면하였고 향후 더 나쁜 일이 생길거라는 불안감이 그들을 엄습하였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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