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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 북괴령 양덕군 === ==== 양덕읍 ==== '''陽德邑''' 면적 322.2㎢. 읍소재지는 용계리. 용계(龍溪), 봉계(鳳溪), 용흥(龍興), 태평(太平), 수덕(樹德), 지수(智水), 인평(仁平), 청송(淸松), 세동(細洞), 풍전(豐田), 운니(雲泥), 창(倉)의 12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수덕진(樹德鎭)이 있었고 조선시대 구룡면(九龍面)이 되었다. 하지만 1929년 군청이 본면으로 옮겨짐에 따라 낙천면(洛川面)의 5개리를 편입, 양덕면으로 개칭되었고 1941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41년부터 한동안 신읍(新邑)으로 불렸다고 한다. 읍내 소북대봉, 백산, 남대봉(南大峰, 960m), 유파령(柳把嶺, 852m)이 함남과 경계를 이루고 남서부는 언진산맥이 뻗어 박죽산, 자하산등으로 잇대어 황해도 곡산, 평안남도 성천과의 경계를 이룬다. 옥계천과 낙천이 합류하여 비류강으로 유입되며 하천연변에 분지가 형성되있다. 양덕종(陽德種)으로 불리는 [[콩]]을 비롯해 조, 팥, 옥수수, 메밀, 감자등을 재배해서 먹었고 이중 [[메밀]]을 특히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초(西草)라고 불리는 잎담배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면의 80%를 차지하는 임야에서 소를 키우거나 목재, 약초, 산채, 송이버섯등을 채집했다고 한다. 용계리에는 전국적으로 윾띵한 대탕지온천과 소탕지온천이 있었다고 한다. [[소련군정]]시기 용계리가 5개리(1,2,3,4,5)리로 분리되었고 [[북괴]]수립직후 1949년 용계삼리에서 용계육리, 봉계리에서 사천리(沙川里), 수덕리에서 척이리(尺耳里), 청송리에서 청계리(淸溪里)가 신설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양덕읍'''(용계삼리 + 용계사리), '''용계일리'''(용계일리 + 용계이리), '''용계이리'''(용계오리 + 용계육리), '''태흥리'''(태평리 + 용흥리), '''수덕리'''(수덕리 + 척이리), '''평원리'''(지수리 + 인평리), '''송동리'''(청송리 + 청계리 + 세동리), '''운창리'''(창리 + 운니리 + 풍전리), '''봉계리'''(봉계리 + 사천리)로 개편되었다. 1954년 용계일리와 용계이리의 일부가 양덕읍으로, 용계이리의 나머지가 온천면에서 신설된 상신리로 편입되었다. 1967년에는 송동리와 평원리가 신양군으로 이관되었고 1991년에는 태흥리, 수덕리의 일부지역이 양덕읍으로 편입되었다. ==== 대륜면 ==== '''大倫面''' 면적 189.3㎢. 면소재지는 사기리. 사기(士基), 수주(水注), 구룡(九龍), 통동(通洞), 인흥(仁興), 공진(孔眞), 괘송(卦松)의 7개리를 관할했다. 면내 두류산(頭流山, 1,324m), 아호비령(阿虎飛嶺)등 태산준령으로 함경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무직산(霧織山, 1,206m)이 황해도와 경계를 이룬다. 덕곡산(德谷山, 1,207m)에서 발원하는 물이 무직산에서 발원한 물과 합류해 대동강 지류인 남강을 이룬다. 공진리 괘송리일대는 쌀이 재배되는 분지였고 그외에 조, 콩, 옥수수, 팥, 보리, 메밀등 잡곡과 잎담배, 대마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되었다. 주물공장이 있어 재래식 솥과 농기구를 생산해 군내 각 면에 공급되었다고 한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통동리에서 옥천리(玉川里), 양천리(陽川里)의 2개리로 분리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사기리, '''구룡리'''(수주리 + 구룡리), '''통등리'''(양천리 + 인흥리 + 옥천리), '''추마리'''(공진리 + 괘송리)로 개편되었다. ==== 온천면 ==== '''溫泉面''' 면적 263.5㎢. 면소재지는 온정리. 온정(溫井), 일양(日陽), 창(倉), 진석(眞石), 거차(巨次), 상청(上淸), 하청(下淸), 은우(隱牛), 평암(平巖), 상국(上菊), 하국(下菊), 상신(上信)의 12개리를 관할했다. 71℃의 높은 온도를 자랑하는 돌탕지온천(石湯池溫泉)때문에 온천면이 되었다. 은우리와 함남 고원 산곡면, 운곡면의 삼각경계에는 [[이성계]]가 무예를 연마했다는 기린산(麒麟山, 872m)이 있다.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거차령에서 발원한 물눌기가 하청리에서 합류, 동양면과 황해도 곡산을 관류하면서 남강을 이룬다. 이 강상류에서 관개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원산]]을 통해 들여온 해초를 통해 한천(寒天)을 대량으로 생산했다고 하나, 북괴치하에서 [[고난의 행군]]이 터진 지금은 완전히 좆망한 것으로 보인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진석리 일부에서 순우리(順于里)를 신설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온정리'''(온정리 + 창리 일부), '''일암리'''(일양리 + 평암리 + 동양면 성북리 일부), '''은하리'''(은우리 + 하청리), '''거상리'''(거차리 + 상청리), '''상신리''', '''용암리'''(상국리 + 하국리), '''삼계리'''(진석리 + 순우리 + 창리 일부)로 개편되었다. 1954년 상신리에 용계이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 동양면 ==== '''東陽面''' 면적 114.4㎢. 면소재지는 하석리. 하석(下石), 성북(城北), 상석(上石), 신흥(新興), 수암(水巖), 지경(地境), 용산(龍山), 흘평(屹坪)의 8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양암진(陽巖鎭)이 있었고 조선시대 양덕현의 현청이 있었기에 군내면이 되었다. 하지만 1921년 군청이 양덕읍으로 옮겨지면서 동양면으로 개칭, 좆망했다. 함남 고원군과 경계를 이루는 재령산이 있으며, 그 산의 정상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연(龍淵)이 있었다. 언진산맥의 태산이라고 하는 하람산이 황해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 산에는 치마대(馳馬臺)라는 이성계의 무술연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온천면에서 흐르는 물과 대륜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수암리에서 합류하여 곡산을 거쳐 남강의 상류인 능성강(能成江)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수암, 성북리에는 평야가 전개되었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동양팔경중 하나인 방화정(訪花亭), 유선대, 양덕고성이 있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상성리'''(상석리 + 성북리 일부), '''동양리'''(하석리 + 신흥리 + 수암리), '''용평리'''(지경리 + 용산리 + 흘평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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