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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양키스 시절 === [[파일:양민재.png]]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1선발로 나와 역투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 팬이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떨어지는게 흠이다.''' [[파일:양민재1.png]] '''그가 처음 양키 스타디움에 등판했을때 찍힌 사진. 몇 없는 노이즈 없이 깔끔한 사진중 하나이다.''' 양키스로 간 그는 같은 한국인 [[안승민]]과 원투펀치를 이루어 양키스에게 50승을 선물했다. 그 둘의 활약으로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 올라서는 최고의 팀이 되었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자기들이 유일하게 믿고 따랐다는 말을 했으니, 그가 양키스 덕아웃내에서 얼마나 신임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이다. 그의 나이 32세, 드디어 뉴욕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고, 그는 전설이 되었다. 그해 압도적으로 사이 영 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월드 시리즈에서 3경기를 등판하여 3승을 거둬갔으며, 나머지 승리는 [[안승민]]이 등판해 거둬갔다. 한국인 원투펀치의 위력은 이때를 이후로 아무도 범접하지 못했다. 양키스 덕아웃의 실질적 리더였으며, 따뜻한 친화력으로 모든 선수들이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경기에 돌입하면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실책을 한 수비수들을 꾸짖으면서 팀 케미를 다졌고, 이는 양키스가 우승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같은 한국인 레전드 [[안승민]] 옹이 직접 인정한 사실이다. 장민재가 유일하게 존경했던 선수가 안승민 옹임을 떠올려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와중에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그는 공을 잠시 놓고 곧바로 전쟁에 참가해 과달카날 전투에서 대활약하며 무공 훈장을 수상했다. 군 복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장민재는 이후 베트남 전쟁과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여 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전설이 되었다. 한국 전쟁때는 [[맥아더]] 장군에게 [[인천상륙작전]]에 1순위로 자신을 투입해달라고 권유했고 맥아더도 동의. 인천에 상륙해서 북한군을 자신의 정밀한 제구력으로 수류탄을 야구공 던지듯이 던짐으로써 100명 정도의 적을 폭사시킨것으로 알려졌고, 미군에게는 "킬러 퀸" 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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