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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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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그리고 체포=== 이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자, 남한 정부와 더 자주 회담을 가지면 좋을 거라고 판단한 북괴는 대화가 통할 사람으로 누가 좋을지 고민했는데 이전부터 박정희와 친분이 있었던 황태성이 자원해서 가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정확한 배경이 무엇이었을지 추측이 많다. 남한과 대화를 시작한 다음 통수 쳐서 적화통일하고 요직으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진짜 북조선에서 탈출해서 친구 동생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귀순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물론 황태성과 관련자는 현재 모두 죽어서 알 길이 없으니까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황태성은 1961년 8월, 임진강을 건너서 서울까지 혈혈단신으로 들어왔다. 이전부터 남한에서 활동한 게 꽤 있었기 때문에 남한에서 연줄이 많았던 그는 지인들의 도움을 통해서 가장 먼저 박정희와 김종필부터 만나기로 했다. 황태성은 먼저 김성곤 동양통신 사장부터 찾아갔지만 출장 중이라서 만나지 못하는 바람에 박정희의 대구고등사범학교 후배인 김민하를 만나서 사정을 설명했다. 박정희, 김종필과 접촉할 때까지 당분간 김민하의 집에서 은거했는데 황태성은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조카사위 권상능을 만나서 친필 편지를 김종필에게 전달해주라고 요청한다. 권상능은 일단 그 편지를 박상희의 아내이자 김종필의 장모인 조귀분 씨에게 편지를 전달했는데 이 년이 황태성이 남파했다고 김종필에게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황태성은 결국 중정에게 붙잡혀서 반도호텔 735호실에서 [[코렁탕|뜨뜻한 대접]]을 받았다. 사실 당시 김종필은 초대 중정부장이었기 때문에 안 잡고 내버려놔두면 자기도 화를 입을 거라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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