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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설과정 == 프로야구 이전, 대한민국에는 고교야구와 실업야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 물론 실업야구보다는 고교야구가 20배는 더 인기 많았다. 어쨋든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1970년대 한차례 프로야구를 창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것이 실현 된것은 1981년 [[전두환]] 정부의 국민들의 여가선용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프로스포츠창설을 지시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대한야구협회와 대한축구협회에 "너네 프로리그 만들어보삼"이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대한축구협회는 "운동장에 조명도 설치해야되고, 이러이러 해야하니 돈이 없네염.ㅈㅅ"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반대로 대한야구협회의 이용일과 이호헌이 "정부 지원 없어도 됨!"이라며 호기롭게 추진하게 되었다. 이미 시작부터 [[K리그]]보다 앞서간 셈. 어쨋건 정부 지원없이 프로야구를 구성한다는 건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었는데 대한야구협회는 "대기업들을 조져버리자!"라며 대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당시에는 정부의 힘이 막강했기에 재벌들이라고 이를 따르지 않을수가 없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소비재 생산 기업들이 스폰서를 맡앗지만. (삼미라던가 해태, OB, 나중에 빙그레까지...) ㄴ사실 전두환이 3S정책으로 지 밥줄 안 끊기려고 만든 리그 이후 MBC를 중심으로 롯데 자이언츠(실업)를 소유했던 롯데그룹부터 삼성그룹, 동아그룹, OB그룹, 럭키금성그룹, 한화그룹등에 야구단 창단을 타진했고 이중 롯데, 삼성, OB가 참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팀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기에 해태와 삼미를 끌여들였는데 이것이 프로야구의 시작이었다. 연고지 문제에 있어서 MBC는 서울연고를 자리잡았고 삼미는 인천, 해태는 광주를 연고로 잡았으며 삼성은 이병철이 사업을 시작한 곳이던 대구로 배정받았다. 문제는 서울입성을 노리던 롯데그룹이었는데 KBO에서 "너네 부산 안가면 우리 럭키금성 부산으로 보낸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신격호가 프로야구 참가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KBO의 요구를 수용하고 부산을 연고로 삼게 되었다. OB의 경우 서울연고를 희망하였지만 충청도 연고를 일단 간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한다는 약속을 밭고 대전을 연고로 시작하게 되었다. 맨 처음 창단된 원년멤버로는 다음과 같다. * [[해태 타이거즈]]: 과자 * [[롯데 자이언트]]: 껌 * [[MBC 청룡]]: 방송 * [[삼미 슈퍼스타즈]]: 라면 * [[삼성 라이온즈]]: 텔레비전 * [[OB 베어스]]: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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