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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 나폴레옹 전쟁 당시 대프랑스의 대육군이 러시아에서 얼음이 된 덕분에 이후 빈 체제 시기 유럽의 해상 패권국이자 최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트라팔가르 해전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했다는 지랄을 하는 해적새끼들이 있지만 나폴레옹의 대육군의 최대 승리인 아우스터리츠 대첩은 트라팔가르 해전 직후 일어났다. 빈 체제 시기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제국주의 시대를 개막했다. 아편 팔아먹겠다고 전쟁하기도 했다. 과연 해적새끼들 답다. 이후 벨 에포크 시기 독일 제국이 떠오르자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사실상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체펠린이랑 고타로 조금 건드리기만 했을 뿐 영불해협을 사이에 두고 신나게 불구경했다. 오스만 제국 상대로 전함으로 사기치다가 갈리폴리 전투를 말아먹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의 국제적 위상은 위축되었다. 독일의 벨기에(영국이 독립보장을 하고 있던) 침공으로 인해 참전하여 아프리카에서 [[에르빈 롬멜|사막여우]]도 따먹고 괴링링의 런던핫도 견뎌내며 주요 승전국이 된 영국이었지만 전비를 과도히 지출한 덕에 순채무국이 되었다. 여전히 거대한 식민제국을 거느린 덕에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는 인정받았으나 이미 대서양 건너 미국은 영국의 3배에 이르는 공업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식민지인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하였으며 다른 식민지도 우후죽순으로 영국의 식민제국에서 이탈하였는데, 이는 영국이 더 이상 식민지를 유지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대국으로 남아 있으며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서방 진영에서 군사적으로 미국과 친한 관계를 보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서로 협력관계다.(근데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AIIB 가입으로 통수를 쳤다) 프랑스는 요즘도 여러가지 대외작전(특히 중동)을 수행할때 영국에 양해를 구한다. 미국이 영국을 한번 초토화시키려고 했던적이 있었다. 명예혁명이 무혈? 그건 지들이 프혁보다 덜 피흘렸다고 선전하기 위해 만든 이미지일 뿐. 실제론 무력 충돌 있었다. 그리고 '재커바이트' 반란과 9년 전쟁(1688-1697)이 명예혁명의 후폭풍으로 생긴 거다 사실 영국인의 근간이라는 새끼들이 다름아닌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세력다툼을 하다가 쳐발린 바이킹들이었다. 바이킹 중에서 강한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남아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로 나뉘었고 패배한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쫓겨나서 배를 타고 정처없이 유랑하다가 어느 섬에 들어가서 그곳 원주민(현재의 스코틀랜드인)들을 힘으로 북쪽으로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패배한 바이킹, 즉 앵글로 색슨 족은 터를 잡았으니 이것이 영국의 시작이다. 그리고 영국은 해적과 노략질에만 전념했다. 가장 강력한 해적두목이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로 스페인도 격파하고 참으로 잘나가는 개새끼였다. 그 외에 [[프랑스|개랑스]] 항목에 가도 영국을 까는 주장이 몇 개 있다. 역시 [[프랑스|개랑스]] 유럽의 짱깨 아 참고로 드레이크는 스페인 격파하는데 좆도 한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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