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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재선까지만 하고 물러났다면? == {{찬양|1971년에 임기 채우고 깔끔하게 퇴임해준 만고의 위인 박정희|대한민국 모든 국민}} {{멋있음}} {{성군}} {{간지폭풍}} {{성인}} {{신의 한 수}} {{인성갓}} {{문무겸비}} 박정희는 적어도 1968년까지 개인 비리는 없었으며 그의 비리는 주로 1970년부터 집중되어 있다. 혁명 재판으로 민심 수습하면서 데뷔한 박정희는 경제 개발, [[베트남 전쟁]] 파병 조치 등으로 상당히 많은 업적을 쌓아왔으며 치적도 상당했다. 그러나 7대 대선을 기점으로 흑화하기 시작했다. 권력은 달콤했고 특히 국민 모두가 자신의 부하라는 건 죽기보다 더욱 포기하기 싫은 유혹이었다. 때문에 박정희는 [[이후락|제갈조조]]를 동원해서 헌법 고쳐가면서 출마한 7대 대선에서 온갖 공작을 일삼아 [[김대중]]을 상대로 당선됐지만, 생각보다 작은 차이로 당선되는 바람에 본인 스스로의 리더십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본인이라도 종신 집권을 통해 이 달콤함을 영원히 맛보려고 실행에 옮긴 것이 바로 [[유신 헌법]]이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완벽하게 흑화했다. 하지만 이 유신 헌법은 오히려 박정희에게 커다란 독이 되었으며 이게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지면서 박정희는 말 그대로 끝장난다. 그리고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무력 진압을 말하면서 [[김재규]]가 그의 폭주를 저지할 계획을 실행하게 하였고 이로 이해 박정희는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만약 박정희가 재선만 해서 임기 8년만 채우고 1971년에 순순히 물러났더라면 평생 무시 못할 연금을 받으면서 호화로운 여생을 보냈을 것이고, 본인은 물론 아내 [[육영수]]도 타살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가 지도부에 대한 영향력 역시 죽지 않아서 후임 대통령들이 계속 박정희에게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5만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을 빙자한 [[박근혜|어떤 여자]]를 닮은 면상이 아닌 박정희 면상이 박혀 있었을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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