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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ㄴ 그런 식으로 "손님 박대 = 개인주의"라고 생각하기에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서유럽이나 북미 국가들도 개인주의가 널리 퍼져있는데도 손님 대접은 제대로 한다. 개인주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개인주의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날로 세계 전체에 퍼져가는 반면 북유럽식 손님 박대 풍습은 정작 북유럽에서도 악습 취급을 받으며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남의 집에 초대받아놓고는 굶는 아이들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에서 아동학대의 소지도 부정할 수 없고, 북유럽이 과거에는 손님 대접을 제대로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북유럽 신화 뿐만이 아니라 실사례를 기록한 과거 문헌에도 바이킹들의 손님 접대에 대해 적혀있다. 추가하자면 먼저 스웨덴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극딜하기 시작한 건 중동이나 남유럽 네티즌들도 이용하던 해외 커뮤니티 쪽이고, 오히려 서구화된 한국의 커뮤니티들은 대체로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다. 그걸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편견에 빠져 헬조선이니 어쩌니 하면서 열폭하는 건 핀트를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
ㄴㄴㄴ 그런 식으로 "손님 박대 = 개인주의"라고 생각하기에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서유럽이나 북미 국가들도 개인주의가 널리 퍼져있는데도 손님 대접은 제대로 한다. 개인주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개인주의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날로 세계 전체에 퍼져가는 반면 북유럽식 손님 박대 풍습은 정작 북유럽에서도 악습 취급을 받으며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남의 집에 초대받아놓고는 굶는 아이들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에서 아동학대의 소지도 부정할 수 없고, 북유럽이 과거에는 손님 대접을 제대로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북유럽 신화 뿐만이 아니라 실사례를 기록한 과거 문헌에도 바이킹들의 손님 접대에 대해 적혀있다. 추가하자면 먼저 스웨덴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극딜하기 시작한 건 중동이나 남유럽 네티즌들도 이용하던 해외 커뮤니티 쪽이고, 오히려 서구화된 한국의 커뮤니티들은 대체로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다. 그걸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편견에 빠져 헬조선이니 어쩌니 하면서 열폭하는 건 핀트를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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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원인을 따져보자면 1차대전 이후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스웨덴 농가가 몰락하면서 대규모의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러면서 시골 출신 여성들을 대상으로 혼인빙자간음이 만연해 도시 여성 1인당 사생아 수가 평균 5~6명일 정도로 사생아가 증가했고 대부분 유기되거나 팔리면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를 겪은 다른 나라들은 2차대전으로 징집된 남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상식을 교육하면서 문제가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2차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문제가 지속되었고, 스웨덴 정부가 이걸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몸을 비튼 결과가 개인주의 확산이랑 복지제도 정착이다. 이렇게 일이 수습될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한 세대가 통째로 전통, 문화 면에서 단절돼버리고 접대의 관습 같은 보편적인 풍습도 사라져버렸다. 개인주의의 본고장인 서유럽 사람들이 보기에도 유독 뇌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이때문이다.
이렇게 된 원인을 따져보자면 1차대전 이후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스웨덴 농가가 몰락하면서 대규모의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러면서 시골 출신 여성들을 대상으로 혼인빙자간음이 만연해 도시 여성 1인당 사생아 수가 평균 5~6명일 정도로 사생아가 증가했고 대부분 유기되거나 팔리면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를 겪은 다른 나라들은 2차대전으로 징집된 남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상식을 교육하면서 문제가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2차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문제가 지속되었고, 스웨덴 정부가 이걸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몸을 비튼 결과가 개인주의 확산이랑 복지제도 정착이다. 이렇게 일이 수습될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한 세대가 통째로 전통, 문화 면에서 단절돼버리고 접대의 관습 같은 보편적인 풍습도 사라져버렸다. 개인주의의 본고장인 서유럽 사람들이 보기에도 유독 뇌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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