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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역사인물}} '''王逢規''' [[후삼국시대]]의 호족. 본래 [[의령군]]태수로 있었다가 신라말 군웅할거의 시대가 시작되니까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고 후당에 사신을 보냈다. 그리고 후당은 이미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였던 그를 회화장군(懷化將軍)으로 봉하였다. 이후에도 927년 [[왕건]]과 [[소격달]]에게 뚜까쳐맞고 멸망해 종범하기 전까지 계속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사실상 [[김순식]]처럼 독립국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소송, 차윤웅이 죽은뒤부터 멸망할 때까지 [[청주(신라)|강주]]도독으로 있으면서 [[경상남도]]서부지역의 머튽이 되었다. [[차윤웅]]과 함께 자기 상관이었던 강주도독 [[소송]]을 죽인뒤 그가 반란군 토벌중에 사고사했다고 구라치고 임신했던 소송의 부인 정효부인을 그의 부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 소격달도 자기 아들로 쳐줬고 격달은 나중에 차윤웅의 명령으로 증산산성을 쌓고 [[하동군|하동태수]]가 됬을때 엄마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자살하기 전까진 왕봉규를 자기 애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출생의 비밀 알고나선 그딴거 없이 계속 왕봉규를 때리다가 927년 [[왕건]]과 함께 복수에 성공했다. [[분류 : 후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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