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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브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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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사기캐}} {{파시즘}} [[파일:갓롬만.jpeg]] 독일 제 3제국의 전차 에이스 나치군의 전격전 당시 화려하게 등장한 타 에이스들과 다르게 나치 독일이 슬슬 털리기 시작하던 1943년 데뷔했다. SS 제 103 중전차 대대 소속으로 1943년 10월 티거를 배속받고 1944년 10월 쾨니히스티거로 옮겨 배속받았다. 그리고 1945년 2월 17일과 18일 단치히 전투에서 쾨니히스티거로 66대의 전차와 44대의 대전차포, 15대의 군수 차량을 격파했고 이 전과로 철십자가 훈장을 수여 받는다. 오토 카리우스라던가 미하일 비트만이라던가 쿠르트 쾨니스펜같은 대에이스들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42년까지 우수한 승무원들<ref>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에도 언급된다. 카를 브롬만은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ref> + 병신 같은 적 전차 + 수적 우위를 지니고서 적 전차들을 압살한 대에이스들과 그 자신도 1920년 7우러 20일생으로 45년 당시 25세가 채 되지 않았고 T-26, BT-7, T-34 같은 허접 전차들도 아니고 그 유명한 [[스탈린 전차]]들과 1대 10 맞다이를 까며 전과를 올린 카를 브롬만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특히 단치히 전투는 1945년 나치군 기갑부대 최대의 성과로 허접한 어중이떠중이들로 3년간 경험을 쌓아온 소련의 정예 기갑부대를 맞아 싸워 엄청난 전과를 올린 카를 브롬만은 타 에이스들과 비교해도 밀리지는 않는다. 여하튼 그의 부대는 베를린 공방전 당시 슈테친 지역을 방어했다. 부상에 시달리던 그는 1945년 3월 플렌스부르크행 호송열차로 베를린을 탈출하고 5월 21일 영국군에 포로로 붙잡혀 1947년까지 포로생활을 한다. 그 이후에는 그럭저럭 살다가 2011년 사망했다. 그리고 존나 잘생겼다. == 알고보면 불쌍한 놈 == 17세때 한참 좋을 나이에 나치군 입대 몇년 뺑이치다 단치히 전투에서 맹활약하고 철십자가 훈장+프로파간다 등장+국방보고서에서 언급 이렇게 인생 좀 피나 싶었더니 나치 좆망하고 25세에 전쟁포로생활 SS라 존나 가혹행위잼 기껏 돌아왔더니 [[SS]] 소속이라 전과 싹 다 날라감 미군정과 서독의 나치 탄압으로 프로파간다에서까지 나온 카를 브롬만 인생 좆망 전쟁 후에는 대학병원 치기공으로 일하다 은퇴 사실상 제대로 된 직업은 꿈도 못 꾸고 평생 SS 낙인 명줄은 쓸데없이 길어서 91세까지 장수 광광우럭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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