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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소카베 모리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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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1575~1615년 6월 11일

일본 센고쿠 시대의 인물. 시코쿠 지방의 다이묘였던 쵸소카베 가문의 마지막 후손.

초반 생애 그리고 몰락[편집]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사남으로 태어났다. 큰형 노부치카가 죽은 후 아버지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원래는 둘째와 셋째 형이 있었지만 아빠가 저 둘은 전부 배제하고 끝까지 모리치카를 밀었다. 그 덕분에 1599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쵸소카베가 21대 당주가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시작되자 동군에 서려고 했으나 서군에 의해 진로가 막혀 서군에 서게 되고 이 때 개역을 당하면서 로닌으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이 때 이이 나오마사에게 탄원을 했지만, 가신 중 한 명이 사고를 쳐서 그냥 개역당했다) 이후 이름을 타이간 유우무로 고치고 교토에서 서당의 훈장 노릇을 하며 살았다.

오사카 전투[편집]

1614년, 모리치카는 히데요리의 부름을 받고 오사카 성에 들어온다. 목적은 잃어버린 옛 영지를 되찾는 것이었다. 오사카 5인중 중 한 명이었으며, 유일한 다이묘 출신이었다. 겨울의 진 때는 농성전이었으므로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그러다가 여름의 진이 시작되자 키무라 시게나리와 함께 격전지 중 하나였던 야오, 와카에 전투에서 도도 다카토라 군을 거의 괴멸 직전까지 몰아넣는 맹활약을 했으나 이이 나오타카의 원군이 도착하면서 쪽수에 밀려 패주하게 된다. (같이 싸우던 시게나리는 전사)

최후[편집]

오사카 성이 함락된 후 재기를 노리고 도주했으나, 교토에서 체포되었다. 도쿠가와 측은 할복을 하지 않은 것으로 모리치카를 조롱했으나 '목숨은 아까운 법. 목숨과 오른손이 남아있다면 이에야스와 히데타다를 이꼴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는 말을 남겼고, 6월 11일 자녀들과 함께 교토의 산죠가하라에서 참수되었다. 끝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로 인해 쵸소카베 가문은 멸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