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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류수 전투 == 관구검의 위군과 동천왕의 고구려군은 양구(梁口)에서 만났다. [[삼국사기]]에는 '양맥(梁貊)의 골짜기'로 나온다. 대충 [[요령성]] 본계근처 어딘가로 결정난 상황. 동천왕 : 거 아새끼들 철기땅끄로 까부수면 된! 가즈-아 ㄴ 보병 2만이라고 되있던디 관구검 : 우덜 머-중화의 군머가 이기겠지? 근데 상황은 달랐다. 고구려군의 철기병이 부릉부릉 거리면서 밀려오는 땅끄처럼 위군에게 달려들었고, 위군은 이 땅끄에 탈탈 털리고만다. 관구검 : ;;; 일단 튀자 ;; 관구검은 진을 재정비하고 오리지널 양맥에서 다시 대치한다. 참고로 양맥은 확실히 본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맥이 어디있는지랑 상관없이 위군은 또 고구려 기병에게 탈탈 탈곡당했다. 이렇게 양구전투, 양맥전투에서 위군은 도합 6천~8천의 피해를 낸다. 고구려는 엨 ㅋㅋㅋㅋ 위나라 좆빱새끼! 카 우리 고구려 클라스 에지고 지리고 ㅇㅈ? ㅇ ㅇㅈ 주모~ 냉면육수 한그릇더~ 하면서 국뽕을 빨고 있었다. 어음... 이번엔 전략을 바꿔보자.해서 관구검은 계책을 새로짠다. 이후 고구려군과 위군은 비류수, 지금의 혼강에서 위군과 대치한다. 고구려군은 위군을 공격했지만 위군은 수레를 가로로 세워 방어진을 친다 (방진) 이전과는 달리 방진 앞에서 막힌 고구려 기병대는 급자기 무너지게 되었고, 관구검은 요오시하고 [[버스터콜]] 칼버젼을 통해 투창, 화살로 다굴때리니까 고구려군은 대거 학살당했다. 그동안 치사량으로 국뽕을 빨았던 고구려군은 이 전투에서 제대로 개털리게 된다. 이 전투는 훗날 벌어지는 [[쌍령 전투]], [[현리 전투]]와 함께 [[한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참패로 기억되고만다. 이렇게 비류수에서 도망친 고구려군은 달아나 전시수도인 환도성에서 최후의 저항을 준비했지만 관구검 군대는 환도성도 박살내고만다. 이에 동천왕은 [[런승만|누구]]처럼 [[한강 인도교 폭파|국민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환도성은 안전합니다]]하고 [[빤쓰런]] 했다. 파괴된 환도성으로 입성한 위군은 환도성을 초토화시켜버리고 인근 야산에 관구검기공비라고 자기 전공을 자랑하는 비석을 때려박았다. 성버리고 ㅌㅌ한 동천왕은 훗날 [[조선족]] 소굴중 하나가 된 혼춘에 있던 북옥저로 갔다. 관구검의 부장 현도태수 왕기는 [[옥저]]를 찍고 북옥저로 추격대를 이끌고 쫓아갔다. 근데 이새끼가 [[부여]]가 있던 길림찍고 [[말갈]]이 있던 녕안찍고 북옥저로 왔다는 말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동천왕이 도주한 곳이 남옥저였다고 나온다. 아무튼 이 추격대는 오지게 쫓아왔지만 밀우의 발악, 유유의 [[발터]]때문에 고구려군은 위군을 고구려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고구려와 위나라간의 전쟁은 끝났다. 동천왕은 허벌창난 국내성을 두고 지금의 [[강계]]나 [[자성군]]강건너로 추정되는 동황성(東黃城)으로 수도를 옮긴 동천왕은 245년 신라북쪽도 공격하며 찔러봤다가 결국 248년 40세의 나이로 죽는다 (스트레스 때문인듯) 이 공로로 관구검은 좌장군으로 승진하고, [[제갈탄]]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침공을 막아낸다 관구검 : [[고구려]]나[[ 오나라]]나 거기서 거기노 ㅋㅋㅋㅋㅋㅋ 여기까지가 관구검의 전성기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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