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국민보호선도연맹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학살 이후 == === 제1공화국 ===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인정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박정희 같은 전향 빨갱이 몇몇은 용케 살아남았다 ㄴ 김일성 덕분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군이 말소 당한 그의 군적을 되살렸다. 이른바 김일성이 살린 사람이 세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대만의 장개석(한국전 터지면서 짱깨의 대만 상륙작전 무기한 연기), 한 명은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한국전 터졌단 소식 듣고 요시를 외쳤단 썰이 있을 정도로 다 죽어가던 일본이 살아났다), 마지막 한 명이 박정희란 말이 있을 정도. ㄴㄴ 싱먼 리도 포함일 거다. 전쟁이 없었으면 좀 더 일찍 하와이에서 지냈을 거다. 문제는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남북한 어느 쪽이든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빠져나갔고 살아남았다. 일례로 보련회원은 아니었지만 위에 누가 언급한 박정희는 남로당 숙군 작업 중에 걸렸을 때 같은 만주쪽 출신인 백선엽, 정일권, 김창룡 등이 도와주어 살아남았다. 일찍 죽은 김창룡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보답으로 3, 4공화국 기간 내내 잘나갔었다. 즉 힘없고 빽 없고 돈 없는 사람들만 걸려들어 죽어버린 셈이다. 개전과 동시에 런하는 추태를 보였던 주제에 이승만 정권은 서울에 돌아온 뒤 뻔뻔스럽게 그 이후로 유족들을 연좌제를 적용했다. 참고로 연좌제는 1894년 일제가 개좆같다고 갑오개혁 때 앞장서서 폐지하라고 했고 조선 내각도 이에 동의해서 없앴다. 그리고 그 천하의 일제도 연좌제는 되살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뛰는 일제 위에 나는 헬조선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것도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80년대 말에 폐지된다. === 제2공화국 === 런승만의 문민독재 정권을 4.19 혁명으로 무너뜨리고 수립된 제2공화국은 국회 차원에서 보도연맹 진상조사위원회가 설립되어 조사 활동에 나선다. 또한 보련 피해자 유족들도 싱먼 리의 탄압이 사라지자 양지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 제3~5공화국 ===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전향 빨갱이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뒤로 군사 정권이 이들을 모조리 재판에 회부해서 처벌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리고 유족회는 해산되고 유족들은 다시금 연좌제가 적용되어 빨갱이의 가족이란 딱지가 붙어 말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탄압을 받았으며, 위령비는 땅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ㅉㅉㅉ 정작 저런 양반이 첫 대통령 선거 때 윤보선 캠프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거론하며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하자 메카시즘적 선동 자제요 ㅠㅠ를 외쳤다니 통탄하지 않을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여기엔 배경이 있는데 남로당 전력 때문에 미국마저 그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와중이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용공분자 같은 발언이나 행위를 했다가는 미국이 친히 카운터 쿠데타를 먹여 인실좆을 시전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저렇게 미국 눈밖에 났다가 좆된 케이스가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칠레의 아옌데 등 수없이 많다. 즉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과 북한 특사 황태성과 같은 저시점의 희생자인 셈.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