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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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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 사태 == [[파일:반인반머신vs재규.jpeg|350픽셀]] [[파일:김재규 맥크리.jpg|350픽셀]] {{인용문2|'''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유신이...진다...''' 참고로 위 짤은 현장검증 사진인데, 아따 맥크리 합성 잘 했다~ 현재 김재규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이론들은 거의 대부분이 박정희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이상의 폄하를 수반하고 있는데 김재규가 10.26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한 것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박정희가 카이사르적 지도자였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브루투스적 암살자였던 김재규의 대의에 대한 투명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초기의 박정희는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면모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나, 액튼 경이 제시한 절대 권력의 절대부패론대로 집권이 길어지며 점점 부패하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한 정권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그때부터 제도나 정치환경의 중립성이 점점 무너지고 붕괴하며, 20년 정도 장기집권이 계속되면 전체적인 균형능력 자체가 상실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왕조에서 정조의 집권 20년 후 합리적으로 돌아가던 조선의 정치체계가 붕괴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액튼 경은 절대 권력이 절대 부패하는 이유로 독재자가 합리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적으며, 설사 합리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장기간 유지될 리가 없다고 제시했는데, 박정희는 전형적인 후자에 해당하는 독재자였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독재자가 가장 무서운 유형의 독재자다. 초기에 쌓아놓은 치적과 권위를 바탕으로 대중을 마비시키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정치 체제에서 이탈해 유신으로 치달으며 개인사적으로는 육영수 암살 등의 사건을 겪고 박정희는 점점 독재 말기적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ㄴ 애초에 5.16 당시 미국의 협박때문에 총통제를 못한거다. 차지철의 전횡을 방기한 것, 대행사 소행사 등의 행위, 최태민의 비리를 고발한 김재규를 오히려 꾸짖은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후에 문서화된 사건만 이 정도고 증언으로 남아 있으나 신빙성이 없어 증명되지 못한 것 중에는 더한 것도 널려 있으니, 김재규가 직접 보고 겪었으나 말하지 못한 말기적 병폐는 수도 없이 더 많을 것이다. 박정희의 가장 절친한 후배로서, 2인자였던 김재규는, 유신 초기부터 유신 정권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곧 자신의 직위를 활용해 박정희를 잘 보필하여 박정희가 스스로 정권을 이양하고 자유민주주의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겠다는 사상으로 7년간 폭주하려는 유신의 고삐를 붙잡고 유일한 온건파로 행동했다. 절대 왕정 급의 체제를 갖춘 독재체제에서 체제의 정당성과 반대되는 입장을 견지한 채 맞선 것, 그러한 2인자를 가진 것이 유신이 집권 초기부터 바로 5.18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일으킨 5공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김재규는 중정부장으로서 박정희 옆에 머무르며 유신정권이 점점 더 썩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하며 이 정권의 긍정적 면모, 시대적 효용이 다하였음을 점점 확신하고 있었다. 그 예후가 여실히 드러난 절정은 부마항쟁 때의 박정희의 반응으로, 김재규에 따르면 박정희는 그것을 보고받자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차지철은 그 유명한 300만 명 학살 얘기를 내세우며 찬동을 했는데 대놓고 반기를 드러내는 사람 하나 없었던 사건이다. 어떤 이들은 차지철과의 권력 다툼 때문에 김재규가 밀려나 그 울분으로 박정희를 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애초에 김재규에 대해 박정희가 가지고 있었던 호감과 친교를 생각해 보면 정권의 정당성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의견을 여러 차례 표명하고 박정희를 통제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않았더라면 김재규가 애초에 2인자의 자리를 위협받을 일도 없었다. 김재규는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기도 했고, 긴급조치 9호를 폐지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10.26 직전에는 부마 항쟁의 의의를 굉장히 확대하여 제시함으로써 박정희에게 사임을 간접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독재자의 입장에선 입에 매우 쓴 말일 뿐이었다. 이러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김재규의 위치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권력 다툼으로 축소하려는 시도는 비합리적이다. 즉, 유신이 독재정이면서도 폭정이 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통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김재규가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0.26이 가까워짐에 따라 김재규는 스스로가 그 조정 능력을 상실했고 박정희의 폭주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여 물리적 혁명을 결심한 것이다. 10.26 사후에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자료가 확보되기 전까지, 박정희의 가장 큰 적이었던 정치인사들조차도 유신 말기의 내부적 병폐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김재규는 그 당시 상황에서 유일하게 유신 내부의 상황을 꿰뚫고 있었으며, 또 고결한 양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부마항쟁에서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가는 시민들을 보았던 그가 파악하기에 차지철의 300만 학살 발언은 추임새 따위가 아니라 실제로 이뤄질 수도 있는 사건으로 보였다. 이제 최루탄 대신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시민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했다. 동남아의 독재정권에서 흔히 일어났던 대학살이 눈앞에 현실로 닥쳤음을 그 혼자만은 깨닫고 있었다. 그 학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이전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현 유신 정권에 대한 회의감을 여러 차례 사석에서 드러냈던 김재규는, 마침내 그 사건을 계기로 결심을 끝마치고 조용히 장롱에서 총 한 자루를 꺼내 가슴에 품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서 박정희, 차지철, 김계원(비서실장), 김재규가 심수봉, 신재순을 데리고 술을 마시던 중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권총으로 처치한 사건이다. 당일 박정희는 안중근 기념관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원래 예정을 취소하고 술잔치를 벌이러 간 것이었다. 재규어는 [[발터 PPK]]로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을 쏜 뒤 박정희의 우측 가슴을 쏘았다. 같은 시간대 김재규와 뜻을 같이한 [[김흥주]], [[박선호]] 등의 부하들은 경호처장과 경호부 차장 등 박정희 측 심복들을 사살했다. 박정희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고 김재규는 차지철에게 한 발을 더 쏘려고 했으나 이때 발터 PPK의 총알이 걸려버리고 만다. 당황한 김재규는 회식장 밖으로 달려나가 박선호에게 [[M36]] 치프 스페셜을 넘겨받아 회식장으로 돌아왔다. 손목에 총을 맞은 차지철은 죽어가는 박정희를 방치하고 화장실로 숨었는데, 김재규가 도망친 줄 알고 화장실에서 나왔다가 때마침 다시 돌아온 김재규에게 사살된다. 그리고 김재규는 박정희의 머리를 쏘아서 확인 사살, 이렇게 유신정권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김재규가 박정희 살해를 미리 예고해줬던 김계원이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에게 범인이 김재규라고 말하고 김재규가 육본으로 가면서 김재규는 붙잡히게 되었다. 최규하는 김재규의 체포를 명령했으며 군대가 나섰고 김재규는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사형을 선고 받는다. 김재규는 마지막까지 10.26은 권력획책이 목적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깨끗한 혁명이었다고 주장했다. 거기서 최태민도 있었더라면 ㅜㅜㅜ {{박제}} {{병림픽}} {{팝콘}} ㄴ그리고 도주하면서 무고한 종업원이랑 경호원들 죄다 쏘고 나온 건 왜 쏙 빼놓지? ㄴ종업원이야 그렇다 치고 경호원 드립은...총 든 적도 생각해주는 성인군자ㅠ ㄴㄴ 야 ㅋㅋㅋ 만약에 윤봉길 의사 상하이 도시락 폭탄 의거 때 어떻게 해서 쪽바리 시중들던 무고한 조선인 한 명이라도 죽었으면 윤봉길 의사도 살인마 새끼냐고? ㅋㅋㅋ ㄴㄴㄴ훙커우 공원 사건이랑은 다르지 병신아 훙커우 공원 사건은 애초에 특정 인물을 겨냥해서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당시 조선인들의 기개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만방에 알리며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존재한다는 걸 전세계에 퍼져있는 한민족들에게 알리고 응원과 지원을 받기 위한 의거였으며 윤봉길은 사건 직후 또 다른 폭탄으로 바로 자결하려고 했는데 붙잡혀서 실패했는데 김재규는 사건 직후 바로 도주하면서 정승화를 꼬드겨서 계엄령 내려서 지가 정권 잡으려고 한 새끼인데 훙커우 의거를 여기에 비비네 ㅋㅋㅋ 그리고 실제로도 훙커우 공원 의거에서도 조선인이 죽지도 않았어 병신아 ㅋㅋㅋㅋ 그리고 윤봉길은 그때 조선인을 죽이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던 반면 김재규는 고의적으로 도주하기 위해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쏴죽였는데 윤봉길 의사가 어쩌고 어째? ㅋㅋㅋ 니 말대로면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사람을 마구 죽여도 되는 게 정당하다면 4.3사건도 비난하면 안되겠네? ㅋㅋㅋㅋ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말인 줄 알지 ㅋㅋㅋㅋ ㄴㄴ 이 새끼 아직도 분탕질이네 ㅋㅋㅋㅋ 그러니까 계엄령 선포하려고 했다가 중간에 실패로 끝났는데 왜 니혼자 뇌피셜로 싸지르면서 김재규가 자기 멋대로 계엄령 후에 정권 잡니 마니 지랄 염병을 하냐 ㅋㅋㅋㅋ 어차피 끝나버렸는데 ㅋㅋㅋㅋㅋ 그러면서 다른 새끼가 말한 만약 윤봉길 의사 의거 때 무고한 조선인 한 명이라도 죽었다면 윤봉길 의사도 살인마 새끼냐고 하는 질문에 만약은 없다면서 일축했으면서 지는 왜 이루어지지도 않은 일을 이후까지 생각하면서 지랄 발광을 하냐 ㅋㅋㅋㅋ 니 새끼야 말로 내로남불 아니냐? ㅋㅋㅋㅋ 그리고 김재규도 박정희 죽이는 거만 생각했지 그 후에 어떻게 할지 대책은 생각 안 했어. 박정희 죽이지 못하고 경호원에게 자신만 제압 당하고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컸고 또한 박정희랑 차지철 죽인다고 나라가 금방 바뀔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어. 어쨌든 계획만 만들고 실행은 뒤로 미루고 있었지. 그러다가 부마사태 터지니까 박정희가 전국에 계엄령 내려서 시위 제압하려고 하니까 유혈 진압 있을 걸 생각하니까 박정희를 구슬려보려고 하는데 좆도 안 쳐듣고 차지철 씹새끼는 자꾸 성질 건드리니까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서 빡쳐서 급하게 실행한 거지. 그리고 예상치는 못했는데 박정희 죽이는 거는 성공하니까 그 이후의 박정희 잔당들까지 잡는 계획은 치밀하게 생각을 안 해서 중정으로 안 가고 육본으로 가서 정승화한테 계엄령 내리려다가 김계원이 꼬질러서 실패로 끝난 거잖아. 처음부터 쿠데타 생각했으면 후속 대책 그딴식으로 안 짰어. 쿠데타를 생각했으면 거사 당일 우선 군부의 자기편들부터 모이게 한 다음 박정희 쏴버린 동시에 하나회 쳐버리고 중정으로 가서 여론통제 한 뒤 정승화한테 계엄령 선포하라고 했을 거야. 그리고 김재규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건 장준하 아들과 김영삼, 김영삼 보좌관, 미국대사 그리고 부하들의 증언으로 인해 밝혀진 사실인데 왜 니새끼 혼자 부정하냐 ㅋㅋㅋㅋ 그리고 YH여공 사건은 김재규가 직접적으로 개입 안 했는데 그냥 정부 고위 관료로서 거기 있었던 거 뿐이야 또한 선친 묫자리는 윤관도사 손석우란 사람이 써준 건데 선친 묫자리 제왕지운이 타고난 자리라고 좋은데 써줬다고 했는데 그 선의를 거절하냐? 그걸 까네 ㅋㅋㅋㅋ 어쨌든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10.26 사태의 의의인데 박정희랑 차지철 그리고 호위무사인 경호원들 잘 쳐죽여서 박정희 종신독제 막아서 더 이상의 부마사태 희생자 막고 10.26 여파로 전두환도 박정희처럼 되지않기 위해 종신독재 안하고 물러갔으니까 그 당시로 보면 병신 짓이었지만 지금으로 보면 잘한 짓이지 안 그러냐? 그리고 김재규가 독재 정권에 부역했었던 거는 욕먹어야 할 짓이지만 그 욕에 비해 종신 독재정권 종결 낸 것의 공이 훨씬 큰데 ㅋㅋㅋㅋㅋ 그래서 그 공 때문에 깨시민 새끼들이 열사라고 빨면서 좋아하는 건데 결국 적폐가 회심해서 더 큰 적폐 막은 건 잘 한 짓이야. 그리고 10.26은 좋은 의도로 시작했고 경호원들 잘 쳐죽여서 박정희, 차지철도 확인사살까지 시켜가며 잘 쳐죽였고 당시 부마사태 시위 진압으로 인한 더 큰 민간인 희생을 막을 수 있었고 또한 전두환 독재까지는 막지 못했지만 10.26이 있기에 전두환이 영구독재까지는 안 했으며 부마사태 이후 탄압으로 일관해서 어쩌면 현재까지도 갈 수도 있었던 박정희 영구독재를 끝냈기에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좋은 결과가 나온 거 아니냐 좋게 생각하자 ㄴㄴㄴ김재규가 계엄령 내리려고 한 건 내 뇌피셜이 아니라 실제로 김재규가 끊임없이 정승화 부추기면서 하려고 했던 거야 임마 ㅋㅋㅋ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무 죄가 없으면 미수죄는 왜 있냐 ㅋㅋㅋㅋ 박정희가 김재규 손에 죽어서 미화된 거라면 김재규 역시 계엄령 때려서 나라 뒤흔들기 전에 실패하고 붙잡혔기에 미화가 된 거야 병신아 ㅋㅋㅋㅋ 그대로 김재규가 계획한 대로 계엄령 내려서 혁명위원회 만들어서 박정희정권 심판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 잡아 죽였으면 그 새끼도 평가가 전두환이랑 다를 바 없어 병신아 ㅋㅋㅋ 그리고 윤봉길은 조선인을 죽일 생각조차 없었고 실제로 죽이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윤봉길을 들먹이냐고 ㅋㅋㅋㅋ 당시 한인애국단은 침체된 임정 살리고 국내외의 조선인들 지지와 지원 받으려고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로 조선인은 아직 죽지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폭탄 투척한 거고 김재규는 박정희 암살하고 자기가 박정희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계엄령 때리려고 했다니깐? 두 사건은 원인, 과정, 결과부터 전혀 다른데 그놈의 훙커우공원 타령 좀 작작해 ㅋㅋㅋ 그리고 전두환 영구독재를 막은 건 6월항쟁이지 뭔 김재규 타령이야 ㅋㅋㅋ 김재규는 오히려 전두환이 정권 잡는 빌미만 제공했지 신군부 퇴진과는 좆도 상관없는데 10.26이 왜 나와 ㅋㅋㅋ 오히려 김재규가 정승화 꼬드겨서 계엄령만 때리려고 안 했으면 전두환이 12.12 일으키는 일도 없었지 병신아 ㅋㅋㅋ ㄴㄴ ㅋㅋㅋㅋ 누가 계엄령이 뇌피셜이래? 난 계엄령 뇌피셜이라고 쓴 적 없는데? 난 단지 니 새끼가 자꾸 계엄령 일으킨 후에 김재규가 정권을 잡니마니 해서 쓴 거지 병신아 자꾸 왜 원론을 비껴나갈려고만하냐 그리고 전두환이 영구 독재 안하고 사임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간접적인 원인은 됐을 탠데? 난 니 새끼 말 반박하는 이유가 10.26를 저지른 이유가 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단순 권력 욕심이라는 것과 계엄령 일으키고 박정희 잔당 청소 후에 지가 정권을 잡니마니 증거도 없이 뇌피셜로 지 꼴리는 대로 지껄이는 걸 반박하는 거야 ㅋㅋㅋㅋ 그동안 토론하면서 니 새끼가 10.26 일으킨 이유가 권력 욕심 때문에 일으켰다는 김재규 녹취록이나 부하들 증언 같은 직접적인 증언 갖고 왔냐 ㅋㅋㅋㅋㅋ 그리고 김재규가 계엄령 일으킨 거 성공해서 박정희 잔당 청소 후에 자기가 권력 잡는 평행 세계라도 다녀왔냐 ㅋㅋㅋㅋㅋ 딴 거 다 좆까고 그 두 가지 증거나 가져와라 병신아 ㄴ왜 경호원을 쏴죽였냐니...그야 당연히 경호원들이 살아있으면 거사가 실패하니까 그렇지 병신아. 당장 다키키는 발터 한방으로 죽지 않았고 차지철조차 부상만 약간 입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호원을 미리 없애놓지 않는다? 총소리 울리자마자 바로 옆 방에서 튀어와서 김재규 쏴버리고 다카키 응급조치부터 했을 텐데 상식이 있는 놈이면 당연히 경호원부터 처리하지. 안타깝지만 대의를 위한 거사를 계획한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진짜 별 걸 다 트집 잡네. 안중근 의사가 이토 저격하면서 옆에 있던 일본인들도 다같이 쐈다고 안중근 의사도 테러리스트라고 할 거냐. ㄴ 정작 경비원이 아닌 자신이 살려 둔 김계원에게 통수를 맞고 만다. 김계원까지 죽였으면 정말 목격자는 아무도 없게되고 (심수봉 심재선 제외)어떻게 됬을지 아무도 모른다. === 왜 거사를 일으켰는가? === 원래 김재규는 박정희의 친구였다. 같이 장교로 군복무도 했고 그래서 [[이후락]]이 [[윤필용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장에서 보직 해임되자<ref>윤필용이 이후락에게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시기만 하면 중앙정보부장님이 그 후임이 되실 겁니다."라는 존나 큰 말 실수를 했는데 이후락이 이걸 듣고 히히덕 거린 게 이유였다.</ref> 그 후후임<ref>이후락의 바로 다음 후임이 신직수다. 참고로 [[인혁당 사건]]이 신직수 시절에 터졌다.</ref>으로 김재규를 임명했고 김재규는 박정희의 친구라서 박정희가 어떻게 행동하든 박정희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딴지를 거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유신 헌법]]에 반발하는 [[부마항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박정희는 부마항쟁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파일:박정희가죽은진짜이유.jpg]] 김재규는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박정희와 죽을 때까지 함께 가면서 충성을 보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부산, 마산에서 대학살을 일으킬 판이었다. 김재규는 부산 시민들과 마산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김재규의 이 결단은 '''부산과 마산 시민들을 살리게 된다.''' ㄴ 학살 발언은 김재규가 "차지철이 이러이러했다"는 항소 보충서 내용에만 나온 내용이고 실제로 한 발언이었는지는 김재규 혼자만이 알겠지. 게다가 김재규가 꾸며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몇백만을 학살하면 미국과 유엔이 가만히 안 있는다. ㄴ 그래도 정황상 현실 가능성은 충분했다. 부마 지역에 계엄령, 위수령이 떨어졌고 탱크가 들어왔으며 사격이 5.18처럼 언제 개시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던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부마항쟁이 일어난 1979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과 미국 국무부가 기타 대사관들에 보낸 문건에 따르면 서울 등 기타 지역에도 시위가 벌어졌기에 다른 지역에도 계엄령을 발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바보가 아니면 알겠지만 지금 시위한다고 계엄령 내리고 군대로 시내 장악하는 짓거리를 한다면 그대로 '''탄핵'''이다. 그걸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것부터 애초에 당시 시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최악의 경우 시민이 죽든 군인이 죽든 둘 중 하난 피를 봤을 것이고... 또 미국, 유엔 드립은 순진한 희망 사항일 수 있는 게, 당시 미국 카터 정권이 인권 개선을 내세우며 주한미군 철수론 등으로 박정희와 사이가 나빴던 건 사실이지만 이후 레이건 정권까지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 잡고 5.18 학살한 전두환 정권을 잘만 인정해줬다. 유엔은 지금도 내전이나 북한 수용소를 비롯한 각국 내정에 별 힘을 못쓰는 실정이고... 미국이 이후 6월 항쟁에서 전두환 정권에 압박을 넣으며 도움 주기도 하지만, 결국 당시 미국에게 중요한 건 일단 한국의 정치적인 안정이었기 때문에 내정 간섭 수준으로 깊숙이 개입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ㄴ 그러니까 미국 원하는 게 한국의 안정인데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걸 방관만 한다고? ㅋㅋㅋㅋ 5.18때는 시민군이 무기고 털어서 똑같이 폭력적으로 대응을 하니까 니가 위에서 총 든 경호원 이야기하듯이 총 든 놈을 방관만 할 수는 없으니 똑같이 총으로 대응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부마항쟁 때는 아직 폭력시위로 변질되기 전이었는데 무슨 명분으로 수백만 명을 사살해 ㅋㅋㅋㅋㅋ ㄴㄴ 5.18때 첫 발포는 계엄군 쪽에서 이뤄졌다. 무기고를 턴 건 그 이후다. 최초 발포한 시점 이전에도 계엄군은 진압봉, 착검한 M16 소총으로 민간인과 학생들을 개 패듯이 패고 찔러대느라 이미 광주에서는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자비한 놈들에게 돌 던진 게 과도한 폭력 시위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혀 깨물고 자살하자. 그리고 부산, 마산에서 수백만 명이 실제로 죽는 일은 니 말대로 없었지만 현장은 5.18 수준으로 거칠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9007#09T0 출처] {{인용문|10월 17일 시위대는 오후 7시 25분경 충무파출소를 부수고, 서부경찰서에 돌을 던진 다음에 동대신파출소를 또 파괴했다. 그런 식으로 서구 지역을 휩쓸었다. 오후 8시 20분경 부산역 방면에서는 초량1파출소를 습격하고 부산진역 쪽으로 올라갔는데, 부산진역 앞에 있는 동부경찰서에서 경찰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고 나서 2500명 정도 되는 시위대가 부산역, 시청 쪽으로 진출했다. 또한 중부세무서, 서대신3동사무소를 습격했다. 경찰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3400여 명을 투입했지만 항쟁의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밤 10시경 육군 2관구 사령관 정상만 소장이 이끄는 지역 부대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그것으로도 시위대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때쯤부터는 시위가 좀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8일 새벽 1시 30분까지 항쟁이 계속됐는데, 이날 시위로 모두 21개소의 파출소가 파손되거나 불탔다. 경찰 차량 6대가 다 타고 12대가 파손됐다. 경남도청과 중부세무서, MBC, KBS, 부산일보, 일부 동사무소 등이 파괴되고 돌팔매질을 당했다. 파출소, 경찰서라든가 관공서, 언론 기관들이 전날보다 더 많이 공격당한 것이다. 그런 속에서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비상 계엄이 선포되고 2개 여단의 공수 부대 등이 투입됐다. (공수 부대와 더불어, 포항에 있던 해병대도 일부 동원됐다. '편집자') 그러면서 당국은 대학을 휴교시키고, 집회와 시위 등 모든 단체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을 검열하고, 사업장 이탈이라든가 태업을 금지하고,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연장하고,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알리는 포고문을 시내 곳곳에 붙였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이 각 대학, 관공서에 들어왔다. 이때 여단장 박희도 준장이 이끌고 온 공수 부대가 부산 시민들한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얼굴에 시커먼 위장 크림을 바른 공수 부대는 참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로 시민들을 마구 폭행했다. 예컨대 '건방지다'면서 시민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려 뇌 수술을 받게 하고 그랬다. 공수 부대의 폭행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백번 양보해서 곤봉으로 때릴 때에도 어깨 밑을 갈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공수 부대원들은 머리를 주로 때렸다. 다친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 경찰조차 군인들한테 맞았다. 동부경찰서의 한 경위는 공수 부대원들이 시민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걸 말리다가, 다른 형사 2명과 함께 10여 명의 공수 부대원한테 몰매를 맞았다.|내용 일부}} 그리고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인정해준 이유는 전두환이 박정희 시절에 꾸준히 개발 중이었던 핵무기, 미사일 등 미국에 위협이 될 무기들을 전면적으로 개발 중단하기로 약속해서 인정받은 건 알지? 그리고 시위한다고 군대 투입하면 탄핵이라고? 노무현은 대추리 시위에 군대 투입하고도 대통령 잘만 했다 븅신아. 물론 지금은 시위대를 계엄군으로 대응하면 탄핵이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야지. 한국 역사상 "민주주의"라는 게 들어온 지 30년도 안 됐던 시절을 지금의 가치관으로 평가하면 쓰냐? ㄴㄴ 시위 진압이 탄핵 사유가 안 된다는 건 맞는 말이다. 전두환은 광주 사태 일으키고도 7년 동안 대통령 임기 채움 ㅇㅇ 참고로 대추리 시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평택 미군 기지 건설에 반대했던 당시 마을 사람들이 철조망으로 둘러싼 군사 보호 구역으로 멋대로 들어오고 폭력 시위를 전개했다. 그리고 안에 있던 비무장 상태의 공병, 경찰들과 충돌이 발생했던 거다. 그걸 일방적으로 군인이 민간인 진압했다는 식으로 말하면 좀 곤란하지. (물론 충돌 이후에 무장 군인 투입을 검토한 정황은 있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4296]) 그리고 5.18때 공식 민간인 사망자 수는 166명이야. 166명으로도 그 정도로 파급력을 내는데 수백만 명이 죽는데 미국이 가만히 있었을 거라고? 100~200만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현실 감각이 안 오냐? 6.25 당시 사망자 수가 137만인데 100~200만을 죽인다는 건 거의 전쟁 수준인데 미국과 유엔이 가만히 있으면 유엔의 존재 이유가 없는데? 이 새끼들은 최순실 300조 드립처럼 왜 이렇게 숫자에 대한 현실 감각이 없냐? ㄴㄴ 우리나라가 UN에 가입한 건 노태우 정부 시기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한 지 6년도 안 된 시기였고 국제적 영향력이 그에 따라서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베트남 파병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욕 먹던 게 당시 미국이라는 건 너도 알 거다. 근데 그랬던 미국에게 뭘 기대하냐? 학살극이 일어났다면 미국이 규탄 성명 내고 주한미군이 박정희 대가리라도 날렸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세계의 여러 개도국에서는 지금도 독재와 반대파 학살, 숙청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이 일일이 뭐라고 간섭하는 거 봤냐? 박정희 정부 시절의 대한민국 경제는 현재 아프리카와 사실상 동급이었다. 너야말로 지금의 가치관으로 당시 상황을 보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냐? 그리고 당장 7개월 뒤에 있었던 5.18 때도 너도 알다시피 미국이 전낙지에게 아무런 터치를 안 했어요 등신아. 대체 뭔 자신감으로 7개월 전의 미국은 박정희를 반드시 저지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고작 7개월 차이인데? 그 사이에 대통령이 레이건으로 바뀌어서? ㄴ진짜 근첩새끼가 개병신같은 소리 써놨네 미국이 전두환한테 아무 터치를 안했다고? 당장 박정희가 김대중 납치했을때 CIA가 직접 중앙정보부에 전화걸어서 압박넣어서 두번 다시는 김대중 건들지 말라고 했고 전두환이 김대중 내란음모로 죽이려고 했을때도 미국이 압박넣어서 사형 못시키고 미국으로 망명까지 시켜줬는데? 민간인 1~200만명을 죽이는걸 미국이 눈감아준다고? 그 어떤 개도국 중에 한꺼번에 수백만명을 죽이고도 미국이 눈감아준 나라가 있음? 우리나라가 UN가입했건 말건은 중요한게 아니지 물론 당시 우리나라가 아프리카랑 비비던 좆밥국가는 맞지만 냉전의 한복판에 위치한만큼 아프리카처럼 제3세계의 세계의 변방은 아니었단다 ㅂㅅ아 1~200만명은 개뿔 수천명만 학살해도 당장 UN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규탄을 받을 짓이고 수출로 먹고살던 나라가 세계 압박을 무시한다? 이건 말도안되는 개소리지 ㅋㅋㅋㅋ 진짜 1~200만명 대학살 드립은 다시봐도 레전드네 ㅋㅋㅋ ㄴ박정희가 그 때 열린 한미정상회담 때 계엄령 해제를 촉구하는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면전에다 대놓고 "인권 좋아하시네"라고 말하며 카터 앞에서 40분간 안보 훈시를 해댈 정도로 미친놈에 권력욕이 ㅈㄴ게 높아서 미국이고 나발이고 다 쌩 까고 걍 밀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음. 또 미국이 5.18도 묵인한 거 보면 그렇게 심하게 터치 안 할 확률도 높음. 그리고 위에도 나와 있듯이 계엄령도 선포했고,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3공수특전여단, 해군 제1해병사단의 제7연대와 2연대의 일부 병력이 탱크까지 끌고 나오기도 했고,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측근인 자치절이 옆에서 다 밀라고 꼬드기고 있고, 거기에 당시 보안사령관은 우리가 잘 아는 전두환인지라 밀 확률이 결코 낮지 않음. 다만 200만명이 보통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거를 다 밀진 않았겠지만 만약에 밀었다면 최소한 5.18보다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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