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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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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거사를 일으켰는가? === 원래 김재규는 박정희의 친구였다. 같이 장교로 군복무도 했고 그래서 [[이후락]]이 [[윤필용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장에서 보직 해임되자<ref>윤필용이 이후락에게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시기만 하면 중앙정보부장님이 그 후임이 되실 겁니다."라는 존나 큰 말 실수를 했는데 이후락이 이걸 듣고 히히덕 거린 게 이유였다.</ref> 그 후후임<ref>이후락의 바로 다음 후임이 신직수다. 참고로 [[인혁당 사건]]이 신직수 시절에 터졌다.</ref>으로 김재규를 임명했고 김재규는 박정희의 친구라서 박정희가 어떻게 행동하든 박정희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딴지를 거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유신 헌법]]에 반발하는 [[부마항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박정희는 부마항쟁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파일:박정희가죽은진짜이유.jpg]] 김재규는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박정희와 죽을 때까지 함께 가면서 충성을 보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부산, 마산에서 대학살을 일으킬 판이었다. 김재규는 부산 시민들과 마산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김재규의 이 결단은 '''부산과 마산 시민들을 살리게 된다.''' ㄴ 학살 발언은 김재규가 "차지철이 이러이러했다"는 항소 보충서 내용에만 나온 내용이고 실제로 한 발언이었는지는 김재규 혼자만이 알겠지. 게다가 김재규가 꾸며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몇백만을 학살하면 미국과 유엔이 가만히 안 있는다. ㄴ 그래도 정황상 현실 가능성은 충분했다. 부마 지역에 계엄령, 위수령이 떨어졌고 탱크가 들어왔으며 사격이 5.18처럼 언제 개시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던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부마항쟁이 일어난 1979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과 미국 국무부가 기타 대사관들에 보낸 문건에 따르면 서울 등 기타 지역에도 시위가 벌어졌기에 다른 지역에도 계엄령을 발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바보가 아니면 알겠지만 지금 시위한다고 계엄령 내리고 군대로 시내 장악하는 짓거리를 한다면 그대로 '''탄핵'''이다. 그걸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것부터 애초에 당시 시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최악의 경우 시민이 죽든 군인이 죽든 둘 중 하난 피를 봤을 것이고... 또 미국, 유엔 드립은 순진한 희망 사항일 수 있는 게, 당시 미국 카터 정권이 인권 개선을 내세우며 주한미군 철수론 등으로 박정희와 사이가 나빴던 건 사실이지만 이후 레이건 정권까지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 잡고 5.18 학살한 전두환 정권을 잘만 인정해줬다. 유엔은 지금도 내전이나 북한 수용소를 비롯한 각국 내정에 별 힘을 못쓰는 실정이고... 미국이 이후 6월 항쟁에서 전두환 정권에 압박을 넣으며 도움 주기도 하지만, 결국 당시 미국에게 중요한 건 일단 한국의 정치적인 안정이었기 때문에 내정 간섭 수준으로 깊숙이 개입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ㄴ 그러니까 미국 원하는 게 한국의 안정인데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걸 방관만 한다고? ㅋㅋㅋㅋ 5.18때는 시민군이 무기고 털어서 똑같이 폭력적으로 대응을 하니까 니가 위에서 총 든 경호원 이야기하듯이 총 든 놈을 방관만 할 수는 없으니 똑같이 총으로 대응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부마항쟁 때는 아직 폭력시위로 변질되기 전이었는데 무슨 명분으로 수백만 명을 사살해 ㅋㅋㅋㅋㅋ ㄴㄴ 5.18때 첫 발포는 계엄군 쪽에서 이뤄졌다. 무기고를 턴 건 그 이후다. 최초 발포한 시점 이전에도 계엄군은 진압봉, 착검한 M16 소총으로 민간인과 학생들을 개 패듯이 패고 찔러대느라 이미 광주에서는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자비한 놈들에게 돌 던진 게 과도한 폭력 시위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혀 깨물고 자살하자. 그리고 부산, 마산에서 수백만 명이 실제로 죽는 일은 니 말대로 없었지만 현장은 5.18 수준으로 거칠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9007#09T0 출처] {{인용문|10월 17일 시위대는 오후 7시 25분경 충무파출소를 부수고, 서부경찰서에 돌을 던진 다음에 동대신파출소를 또 파괴했다. 그런 식으로 서구 지역을 휩쓸었다. 오후 8시 20분경 부산역 방면에서는 초량1파출소를 습격하고 부산진역 쪽으로 올라갔는데, 부산진역 앞에 있는 동부경찰서에서 경찰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고 나서 2500명 정도 되는 시위대가 부산역, 시청 쪽으로 진출했다. 또한 중부세무서, 서대신3동사무소를 습격했다. 경찰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3400여 명을 투입했지만 항쟁의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밤 10시경 육군 2관구 사령관 정상만 소장이 이끄는 지역 부대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그것으로도 시위대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때쯤부터는 시위가 좀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8일 새벽 1시 30분까지 항쟁이 계속됐는데, 이날 시위로 모두 21개소의 파출소가 파손되거나 불탔다. 경찰 차량 6대가 다 타고 12대가 파손됐다. 경남도청과 중부세무서, MBC, KBS, 부산일보, 일부 동사무소 등이 파괴되고 돌팔매질을 당했다. 파출소, 경찰서라든가 관공서, 언론 기관들이 전날보다 더 많이 공격당한 것이다. 그런 속에서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비상 계엄이 선포되고 2개 여단의 공수 부대 등이 투입됐다. (공수 부대와 더불어, 포항에 있던 해병대도 일부 동원됐다. '편집자') 그러면서 당국은 대학을 휴교시키고, 집회와 시위 등 모든 단체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을 검열하고, 사업장 이탈이라든가 태업을 금지하고,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연장하고,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알리는 포고문을 시내 곳곳에 붙였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이 각 대학, 관공서에 들어왔다. 이때 여단장 박희도 준장이 이끌고 온 공수 부대가 부산 시민들한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얼굴에 시커먼 위장 크림을 바른 공수 부대는 참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로 시민들을 마구 폭행했다. 예컨대 '건방지다'면서 시민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려 뇌 수술을 받게 하고 그랬다. 공수 부대의 폭행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백번 양보해서 곤봉으로 때릴 때에도 어깨 밑을 갈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공수 부대원들은 머리를 주로 때렸다. 다친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 경찰조차 군인들한테 맞았다. 동부경찰서의 한 경위는 공수 부대원들이 시민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걸 말리다가, 다른 형사 2명과 함께 10여 명의 공수 부대원한테 몰매를 맞았다.|내용 일부}} 그리고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인정해준 이유는 전두환이 박정희 시절에 꾸준히 개발 중이었던 핵무기, 미사일 등 미국에 위협이 될 무기들을 전면적으로 개발 중단하기로 약속해서 인정받은 건 알지? 그리고 시위한다고 군대 투입하면 탄핵이라고? 노무현은 대추리 시위에 군대 투입하고도 대통령 잘만 했다 븅신아. 물론 지금은 시위대를 계엄군으로 대응하면 탄핵이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야지. 한국 역사상 "민주주의"라는 게 들어온 지 30년도 안 됐던 시절을 지금의 가치관으로 평가하면 쓰냐? ㄴㄴ 시위 진압이 탄핵 사유가 안 된다는 건 맞는 말이다. 전두환은 광주 사태 일으키고도 7년 동안 대통령 임기 채움 ㅇㅇ 참고로 대추리 시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평택 미군 기지 건설에 반대했던 당시 마을 사람들이 철조망으로 둘러싼 군사 보호 구역으로 멋대로 들어오고 폭력 시위를 전개했다. 그리고 안에 있던 비무장 상태의 공병, 경찰들과 충돌이 발생했던 거다. 그걸 일방적으로 군인이 민간인 진압했다는 식으로 말하면 좀 곤란하지. (물론 충돌 이후에 무장 군인 투입을 검토한 정황은 있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4296]) 그리고 5.18때 공식 민간인 사망자 수는 166명이야. 166명으로도 그 정도로 파급력을 내는데 수백만 명이 죽는데 미국이 가만히 있었을 거라고? 100~200만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현실 감각이 안 오냐? 6.25 당시 사망자 수가 137만인데 100~200만을 죽인다는 건 거의 전쟁 수준인데 미국과 유엔이 가만히 있으면 유엔의 존재 이유가 없는데? 이 새끼들은 최순실 300조 드립처럼 왜 이렇게 숫자에 대한 현실 감각이 없냐? ㄴㄴ 우리나라가 UN에 가입한 건 노태우 정부 시기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한 지 6년도 안 된 시기였고 국제적 영향력이 그에 따라서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베트남 파병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욕 먹던 게 당시 미국이라는 건 너도 알 거다. 근데 그랬던 미국에게 뭘 기대하냐? 학살극이 일어났다면 미국이 규탄 성명 내고 주한미군이 박정희 대가리라도 날렸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세계의 여러 개도국에서는 지금도 독재와 반대파 학살, 숙청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이 일일이 뭐라고 간섭하는 거 봤냐? 박정희 정부 시절의 대한민국 경제는 현재 아프리카와 사실상 동급이었다. 너야말로 지금의 가치관으로 당시 상황을 보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냐? 그리고 당장 7개월 뒤에 있었던 5.18 때도 너도 알다시피 미국이 전낙지에게 아무런 터치를 안 했어요 등신아. 대체 뭔 자신감으로 7개월 전의 미국은 박정희를 반드시 저지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고작 7개월 차이인데? 그 사이에 대통령이 레이건으로 바뀌어서? ㄴ진짜 근첩새끼가 개병신같은 소리 써놨네 미국이 전두환한테 아무 터치를 안했다고? 당장 박정희가 김대중 납치했을때 CIA가 직접 중앙정보부에 전화걸어서 압박넣어서 두번 다시는 김대중 건들지 말라고 했고 전두환이 김대중 내란음모로 죽이려고 했을때도 미국이 압박넣어서 사형 못시키고 미국으로 망명까지 시켜줬는데? 민간인 1~200만명을 죽이는걸 미국이 눈감아준다고? 그 어떤 개도국 중에 한꺼번에 수백만명을 죽이고도 미국이 눈감아준 나라가 있음? 우리나라가 UN가입했건 말건은 중요한게 아니지 물론 당시 우리나라가 아프리카랑 비비던 좆밥국가는 맞지만 냉전의 한복판에 위치한만큼 아프리카처럼 제3세계의 세계의 변방은 아니었단다 ㅂㅅ아 1~200만명은 개뿔 수천명만 학살해도 당장 UN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규탄을 받을 짓이고 수출로 먹고살던 나라가 세계 압박을 무시한다? 이건 말도안되는 개소리지 ㅋㅋㅋㅋ 진짜 1~200만명 대학살 드립은 다시봐도 레전드네 ㅋㅋㅋ ㄴ박정희가 그 때 열린 한미정상회담 때 계엄령 해제를 촉구하는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면전에다 대놓고 "인권 좋아하시네"라고 말하며 카터 앞에서 40분간 안보 훈시를 해댈 정도로 미친놈에 권력욕이 ㅈㄴ게 높아서 미국이고 나발이고 다 쌩 까고 걍 밀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음. 또 미국이 5.18도 묵인한 거 보면 그렇게 심하게 터치 안 할 확률도 높음. 그리고 위에도 나와 있듯이 계엄령도 선포했고,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3공수특전여단, 해군 제1해병사단의 제7연대와 2연대의 일부 병력이 탱크까지 끌고 나오기도 했고,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측근인 자치절이 옆에서 다 밀라고 꼬드기고 있고, 거기에 당시 보안사령관은 우리가 잘 아는 전두환인지라 밀 확률이 결코 낮지 않음. 다만 200만명이 보통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거를 다 밀진 않았겠지만 만약에 밀었다면 최소한 5.18보다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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