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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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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에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간 것에 관한 문제=== 위에 서술했듯 이것이야말로 김재규의 가장 큰 실책인데, 김재규는 10.26 이후 48시간 이내에 비상계엄령을 일으킨 뒤 5개월 안에 소위 '유신의 잔재'를 설거지하고 한국에 민주주의를 놓는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육본에 있던 장군들은 박정희의 사망과정에 대해 더 크게 생각했고 현장수습을 완벽하게 해놓지 않고 육본에 온 김재규는 당황했다. 설상가상으로 김재규가 살해를 미리 예고해줬던 김계원이 통수를 까면서 김재규는 막장으로 몰아진다. 김재규가 권력이라는 왕좌가 목적이었든, 민주주의가 목적이었든 비상계엄령을 일으키기 위해선 중앙정보부로 입성한 후 차지철의 쿠데타 시도에 대항해 중정부장인 본인이 차지철을 사살했지만 박정희는 총격에 사망하였다 이런 식으로 공작했어야 됐는 것은 자명하다. 차후조사를 할 수 없도록 안가에 불을 질러버린다거나... 중정 수사부의 K국장은 평소 김재규가 최태민과 차지철로 인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아마 이러한 스트레스에 더불어 부마사태와 박정희 차지철의 발언등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겪고 있던 김재규가 10.26 다음의 플랜을 더 확고하게 짜지 못했고, 대통령을 포함 십수명을 살해한 10.26후의 상태에선 피로와 충격을 겪으며 명쾌한 판단을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교수에 의하면, 흔히 암살을 준비하고 거기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그 후는 대비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로마의 카이사르의 암살이다. 그 후에 우왕자왕하다 제 2차 삼두정치 후 제정이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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