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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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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일련의 행동은 무의미하다 설=== {{깨시민}} {{팩트폭력}} 이 때문에 김재규의 일련의 행동들이 자유민주주의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무의미했다는 부정론인데 이건 사실상 물에 빠진 새끼 구해놨더니 지갑을 요구하는 정도의 경우없는 소리로 김재규가 [[발터 PPK]]와 [[M36 치프 스페셜]]을 들기전까지 아무도 박정희 상대로 반역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군부는 박정희에 대해 매우 충성적이었으며 [[유신헌법]]은 선거인단과 의회 멤버, 의회 해산권, 계엄권을 전부 대통령이 조종하기 때문에 뒤질때까지 박정희가 종신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 시민혁명으로 정권 쟁취? 헌법이 개정되었으며 대학생 천여명이 제적당해 한순간에 앰생이 되는 극한의 공포정치와 시위대가 공수여단한테 존나 쳐맞는 상황까지 온 독재국가에서 어떻게 시민들이 100% 이길거란 장담을 한단 말인가? 완벽한 독재국가에서 시민들이 혁명을 성공하기 위해선 정규군과 비슷한 무력을 가지거나 하나도 빠짐없이 죽을생각을 하고 국민 전부가 참여해야하며, 혁명과정에서 비극적이고 심각한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비폭력주의로 무장하고 [[천안문 사태|천안문]]에서 탱크에 대가리 으깨진 중국의 청년들을 생각해보자.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그들의 희생은 숭고했었지만 작금의 중국은 일당독재국가이며 중국인들의 국민성은 개씨발이다. 또한 전두환에게 쿠데타를 당한 것은, 하나회의 실체를 파악치 못하고 쿠데타를 저지하지 못한 정승화, 그리고 무능하기 그지없던 최규하가 병신인 것으로 김재규를 탓하기엔 어렵다. 가끔씩 10.26을 폄하하는 좌파성향쪽 인간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10.26을 일으키지 않아도 국민이 알아서 박정희를 몰아내고 시대적 평가를 바꾸어놓았을 텐데 괜히 개인적으로 처단해서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하게 했다고. 이건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민의 힘을 추승하고 절대화하여 세력적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김재규에게 민주화의 공을 넘겨주기 싫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주장이다.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문학이나 찬가에서 이상화되어 표현되는 민중과는 달리현실적인 정치적 변수로서의 민중은 절대선으로 사회를 견인하는 절대적인 추동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며, 다른 현실적 변수들에 굴복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전 세계사적으로 보았을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는 매우 특이하게 두 번이나 (이제 [[박근혜|세 번이다]]) 국민들이 시위로 독재자를 몰아낸 경험이 있어 '''시위하면 무조건 국민이 승리한다''' 이런 '''망상'''에 젖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세계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박정희 수준으로 권력이 공고한 독재자와의 투쟁에서 저항하는 국민이 패배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니 극단적으로 말해서 박정희 같은 독자재를 몰아낸 경우는 없다.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죽였잖아여 크헤헿 같은 개소리를 괜히 지껄인 게 아니다. 유신 시점의 박정희는 이승만, 전두환 따위와는 그냥 궤 자체가 다른 최강의 독재자다. 유신이 한창이던 시절에조차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도 국민 중 많았다. 국민장 열리고 국민들이 떼거지로 펑펑 울면서 수십만 운집한 거 보면 몰라? 지금도 틀딱들은 박정희를 반인반신에 세종대왕보다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는 오죽할까? 박정희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독재자라는 평가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전두환, 이승만 때 수준의 저항이 일어났을까? 당시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붕괴 상태였기 때문에 유신은 자연적으로 소멸할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식의 분석은, 어째서인지 독재정에 민주정의 성립 전제를 달아 분석하고 있다. 그 모든 실정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게는 군대가 있었으며 침묵하는 동조자들이 매우 널려 있었다. 당시의 시민 사회는 전혀 결집된 상태가 아니었고 언론 및 제반환경 역시 박정희의 손 안에 떨어져 있었다. 오일쇼크 등의 외부적 변수로 인한 충격은, 그런 힘을 바탕으로 민중의 저항을 2~3년만 막았더라면, 또 다른 외부적 변수의 공급으로 인해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장 그 시대 이후 80년대에 바로 들이닥친것이 그 유명한 '3저 호황'이고 이 3저 호황의 덕으로 대한민국은 90년대 말 IMF가 올 때까지 내외부적으로 보이는 수치가 상승일로였다. 이거 하나 때문에 전두환이 구제불능의 살인마임에도 경제를 살렸다고 운운하는 틀딱들과 베츙이들이 있는데 이게 지금도 호불호가 극명한 박정희한테 후광이 되었다고 생각해봐라. 지금 박근혜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소위 '박정희 신화'는 정말 반석위에 올랐을것이다. 그 시대의 술회를 살펴보면, 당시 항쟁에 참여하던 부마 시민들조차 박정희가 죽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증오 섞인 말이 맴돌지도 않았으며, 이승만 시절처럼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는 위협도 그렇게 심각하게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시위 참가자이면서도 박정희의 죽음에 눈물을 훔치던 사람조차 있었다. 대중은 어째서인지 영웅적 지도자를 스스로의 대변자라고 생각한다. 이 괴상한 사회적 신뢰인지 무엇인지 모를 기운은 문서화되지 않아 후대에는 정확하게 악하기 어려운 것이나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정확히 고증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한국 민주화의 역사에서 정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 수준으로 공고했던 독재정부는 유신 정부밖에 없었다. 유신 정부 이전까지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정권만을 낳았기 때문에, 막연한 사상적 대의로 무장한 민주주의는 실제적 치적으로 무장한 유신 정부와 맞서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박정희를 욕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심정적 장벽이나 부채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검토하고도 민중적 저항과 봉기로 유신을 쓰러뜨릴 수 있었을 것 같은가? 당시의 지식인들 중에는 겉으로는 시민 사회의 역량 결집과 민주화를 주장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양심적인 군인의 쿠데타'를 통하여 우선 유신체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절대로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조차 많았다. 그런데 그냥 막연하게 "시민이 처단했을 거다"라고 소리치는 것은 너무 순진하며 선동적인 주장이다. 또 결국 전두환이 집권하여 독재를 이어갔으므로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단기적으로 역사를 파악하여 나온 의견이다. 박정희가 쌓아놓은 유신체제라는 괴물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유신을 경험한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는 단절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치지형이 달라졌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유신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고 박근혜를 통해 이 반도에서 날뛰고 있었다. 민의의 결집을 통해 권위에 저항하며 모범적인 민주체제로의 이행은, 유신체제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절대 불가능했다는 것. 독재는 미발달한 사회의 민중과 굉장히 친화성이 큰 제도이다. 개인들은 본능적으로 역사를 위인들의 전기의 연속으로 파악하며, 특정한 개인사적 차원에서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면서도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승인하는 인물을 권좌에 옹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이 본능, 이것이 현실적으로 민주주의는 왕 후보자를 고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대중은 세습된 왕정에는 본능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나 영웅적 지도자에게는 매우, 굉장히, 치명적으로 취약하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기치로 일어섰던 프랑스는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에 휩쓸려 황제로 옹립하는 코미디를 찍고 3대에 걸친 세습이 끝난 후에야 나폴레옹의 잔재를 몰아낼 수 있었다. 초기의 박정희는 분명히 시대적 영웅이었다. 자유주의적 무정부 하에 활력을 낭비하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독재는 사회적 활력의 결집을 위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제도의 시대적 효용이 다하고 정권의 교체가 일어나야 할 시점에 무리하게 체제를 유지 했던 박정희는,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청산되어야 마땅하지만 초기의 업적만으로도 대중은 이미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박정희를 대중들이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은가? 나폴레옹처럼 3대를 세습한 후에나 해체되면 다행일 것이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을 거쳐 결국 민주화가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절대왕정 수준의 권위를 가진 독재자인 박정희 체제 → 보다 정당하지 못한 권위를 가진 전두환 체제 → 민주체제로 이행된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의 방아쇠를 당긴 10.26이 어떻게 민주화에 있어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있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초보적인 주장을 살펴보면, 대개 '착한 독재자 박정희 → 김재규 → 나쁜 독재자 전두환'으로 이어졌으므로 결국 김재규는 전두환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라는 정도 수준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 같은 독재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사실을 편집하고 이해하던 상황에서 기존의 이해와 독재에의 정당화를 그만두고, 비판적 맥락으로 다시 한 번 정권을 재검토하게 만든 것이 바로 김재규에 의한 단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즉 전두환이 등장한 상황에서 '이 정부는 나쁘다'라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근거 자체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시대와의 절단이라는 것, 그 사실이 프레임을 짜게 도와주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시대안이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 자유민주주의가 곧바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김재규는 'ㅇ신'이라는 존재만은 확실하게 해체시켰다. 박정희 사후, 그 전에는 그렇게 유신 체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부르짖던 모든 이들은 입들 닫고 순식간에 유신 체제를 해산했다. 유신의 심장이라는 김재규의 표현처럼 박정희 개인이 유신의 핵심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실이다. 개인들의 역사관은 대개 인간을 평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대 중심적, 사회 중심적인 해석을 하지 못하고 한 개인의 치세를 일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어한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그 시대의 지도자에 대한 심정적 동감이나 또는 공격으로 표출된다. 이것이 본능적 역사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박정희의 치세가 계속되는 한, 초기에 시작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호감에서 비롯하여 그가 독재 말기적 징후를 겪건 병폐로 썩어들어가건 계속해서 사실을 선택적으로 편집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옹호하고 유지시켜주었을 것이다. 박정희라는 개인이 소멸한 후에야 그러한 해석의 맥락이 중단될 수 있다. 정말 양보하고 양보하고 양보해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어도 국민들이 저항해서 박정희를 몰아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치자,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박정희에게 항거하다 수천 수만의 국민들이 개죽음을 당했을 거다. 그걸 미연에 방지했는데 무가치하냐? 문제는 반인반신을 몰아내려면 적어도 미국의 지원을 얻어야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데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방지를 원했지 독재를 견제하지는 않았다는거다. ㄴ 이는 전두환 새끼가 쿠테타를 일으켰어도 방관했단 점에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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