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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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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받지 못하고 묻힌 이유 === {{인용문|특이한 사람이다. 중정부장이면서도 항상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하고 다녔다.|윌리엄 클락, 전 미 대사관 정치참사관}} 유신 정권을 이어 자기 독재체제를 구축하려고 들었던 전문어에게 있어 김재규는 당연히 족쳐야 되는 대상이었고 유신 권력의 핵심이었던 중정부장이라는 출신 때문에 좌파 인사들은 선뜻 그를 옹호하려고 들지 않았다. 중정부장으로서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그가 돌연 민주주의를 외치며 독재자를 암살한다는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에 맞는 일로 여겨졌지 현실적인 추론으로 여겨지질 않았다. 고로 자연스럽게 그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한 암살범의 변명으로 여겨졌고, 집권에 실패한 암살자에게 따라붙는 유서깊은 평가인 '권력욕에 찬 시해범','우발적 살해범' 따위의 모멸적인 낙인이 찍혔다. 그의 원 세력인 유신 세력에게서 그는 등을 돌렸으며, 좌파 진영은 혹 민주화의 공을 빼앗길까봐 그리고 권력을 맛보는 동안 자신들의 지지층이 등돌릴까봐 그가 권력욕과 집권욕 때문에 박정희를 시해한 쿠데타범이라는 우파의 말에 침묵으로 동조해서 죽게 내버려뒀다. 그렇게 김재규는 쓸쓸히, 들어 주는 사람 하나 없는 가운데 '자유 민주주의를 만끽하라'고 외치며 사형대로 홀로 걸어올라갔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후 공개된 수많은 기록물,증언들을 살펴보면, 그는 정말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막연해보이는 대의를 위해서 10.26을 결행했음을 의심하기 어렵게 된다. 적어도 그를 접하고 그의 인품을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김재규가 야망이나 야심이 아니라 개인적인 민주화에 대한 신념으로 10.26에 나섰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일례로, 시큰둥해서 그를 변호하러 왔던 인권변호사는, 김재규를 만난 지 30분만에 그에게 감화되어 열과 성을 다해 그를 변호하려 들었다고 한다. 12.12가 터진 이후, 신군부는 대놓고 김재규를 개새끼로 몰아가려고 내란사범은 아니다는 소신을 내비친 판사를 끌고가 고문하는 등 서슬이 퍼렇게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가끔 김재규가 말한 자유민주주의적 철학과 신념은 다 변호사가 써 준거 아니냐? 좌파세력이 써준 걸 읊은 것 뿐 아니냐?고 하는데, 당시 좌파세력은 전술되었다시피 김재규를 덮는게 더 이득이었고 변호사들 역시 이런 상황에서 김재규를 옹호해서 얻을 이득이 없었다. 정말로 김재규에게 감화되어 변호를 끝까지 시도했다고 보는 게 올바르다. 실제로, 이 때 김재규를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는 재판 후 김재규를 너무 열심히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신군부에 끌려가 2개월간 갖은 고초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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