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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무신 == {{심플/문무겸비}} {{섭정자}} {{재평가}} {{대국적}} {{심플/불쌍}} {{명장}} {{전잘알}} {{인용문|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짚고서서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존나 과소평가되고 있는 [[조선]]의 명장. 이게 다 [[고구려]] 뽕맞은 새끼들이 기껏해야 고구려 옛땅 일부 수복한 거라고 공적을 축소해서 그렇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윤관]]의 동북9성은 결과가 롤백이니 진짜 상병신짓이지. 6진 개척 이전과 발해 멸망 사이에 얼마나 긴 간극이 있는지 따져보면 이건 수복이 아니라 새로운 정복질이다. ㄴ이때 조선은 발해를 한국사로 생각도 안 했음. 고구려 멸망 이후 첫 수복에 가깝다고 인식함. 거기에 6진땅이 공격하기 쉬운 평지도 아니고 존나 춥고 험한 산지인데 여길 홈그라운드로 삼고 있던 여진애들 죄다 쫓아내고 알박은 걸 보면 김종서가 보통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6진 개척 때문에 흔히 장군이라 불리지만 사실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다. 무예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편이었다고. ㄴ 용력에 관한 일은 휘하 무장인 이징옥이 담당했다. 이징옥이 인지도가 없어서 김종서가 다해먹은 줄 아는 사람이 많다. 황희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됐는데 말로만 청백리하지 실제로는 적당히 썩어있던 [[황희]] 정승과는 달리 부정부패 없던 진짜 강직한 정승이었다고 한다. 분명 수양대군 일당이 썼을 조선왕조실록에도 비리 하나 적혀있지 않은 걸 보면.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살아있는한 자신의 정권탈취가 힘들것이란걸 알고 야밤에 자기 따까리들을 끌고 우르르 몰려가 김종서를 기습, 말 그대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쳐 두부외상으로 죽인다. {{예토전생}} 하지만 그럼에도 김종서는 죽지 않았고 살아남아 반격을 꾀했으나, 끝내 반격에 실패하고 암살 당했다. 암살 당하기 직전 자기가 압송되서 정식으로 문초받고 사형 당할 줄 생각하고 가마 갖고 오라고 일갈했으나 그에겐 불행하게도 수양대군은 그 정도로 정적의 명예를 챙겨주는 새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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