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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메오후}}{{이중적}} 헬조선 최초의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탈조선한 갓치녀들의 대선배다.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 291번지 출생. 일제강점기 때 많은 미술 작품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김우영이라는 남편이 있었는데 [[최린]]을 만나고 바람 펴서 남편한테 이혼 당한 적이 있다. 너무 자유로운 나머지 가부장적 시대인 그 당시에 외도까지 하셨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을 퍼트린 사람인데 지금은 좆같이 변질되어서 나혜석이 꿈꿔오던 페미니즘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ㄴ 나혜석은 자유주의 계열이라서 레디컬 뷔페미들 보면 뒷목 잡음. 이혼 당한 후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좋은 취급도 못 받고 쓸쓸히 살아가다 1948년 요양소에서 사망했다. 웃기는 건 모성애는 강요당한 것. 애는 어미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주장했으면서 정작 죽는 날까지 자식을 보려고 애썼고 자식을 못 잊었다고 한다. 3.1 운동에 가담하고 5개월 복역한 것 때문에 독립운동가로 대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남편이 일본 외무성 부영사를 지냈고, 만주로 이사한 뒤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하는 제1회 조선미전에 작품을 낸 행적 때문에 논란이 있다. 이혼한 뒤에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행적이 전혀 없어서 독립운동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친일 행적이라고 할 것도 미술전시회에 작품 낸 것 외에는 밝혀진 게 없다. 따라서 친일, 독립운동 관련하여 여러 잡음이 있지만 그냥 '신여성' 정도로만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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