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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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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문법병신}} {{쫄보}} {{파오후}} {{고인/자살}} <br> [[파일:도요토미 히데요리.png|500픽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이며 요도기미와의 두번째 소생이다. 자라면서 부터 아버지가 해논게 많아서 금수저란 금수저 다 입에 물었다. 첫째로 오사카성. 천하제일의 명성이였고 가장 일본에서 수익이 많은 도시중 하나였고 둘째는 222만석의 대영지다. 도요토미 가문이 전국을 지배하기 위해 몰수한 영지들 대부분을 상속 받았는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65만석으로 줄었다. 이미 이때부터 사망 플래그가 선 것이나 다름 없었다. 셋째는 외모다. 아버지는 못생길대로 못생겼으나 어머니는 전국 최고의 미남 미녀 가문인 오다 가문의 딸내미시다. 더군다나 키큰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이였기 때문에 좋은 유전자만 받았는지 키는 190정도에 피부는 하얗고 풍채에서 위엄이 감돌았다고 한다. 대신 몸무게가 161kg였다. 즉, 파오후 그 중에서도 진성 파오후였다. 바로 상단에 있는 스무살 무렵의 초상화만 봐도 파오후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넷째는 막대한 재산이다 히데요시는 돈을 엄청나게 쓰는 사람이였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버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 막대한 재산은 고스란히 히데요리에게 간다 다섯째는 이미 도요토미 히데쓰구라는 형이 있었는데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치 제갈량이 유봉 숙청하듯 히데쓰구를 숙청했다. 다 히데요리에게 물려주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은 개뿔! 살인광 새끼한테 눈물이 있다면 개소리지. 물론 도요토미 히데츠구는 친형은 아니었고, 히데요시가 마지막 희망이었던 츠루마츠를 잃고(참고로 이 놈도 히데요시가 53살 되어서 본 아들이었다. 당시에 50대면 할아버지였을 텐데 아주 정력왕이 따로 없다. 그러나 이 놈은 2살때 죽었다.) 자포자기해서 양자로 들인 형이었으니 히데요리가 태어나면 숙청당할 팔자였다. 하지만 히데요리는 금수저 물은거 다 내려놓아야 하는 좆같은 인생을 사는데 첫째는 이에야스가 히데요시보다 장수했다는 거 둘째는 임진왜란 때문에 도요토미 가신은 이미 반쪼가리 인거 셋째는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측실이라는거. 물론 정실로 승격 됬으나 세간에는 어차피 측실이다.. 넷째는 너무 늦게 태어났다는 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56살일 때 태어났다. 그나마도 말이 56살이지 [[세는나이|헬조선식 나이]]로 계산하면 58살일 때다. 히데요시는 헬조선식 나이로 63살에 죽었으니 히데요시가 히데요리를 위해 기반을 마련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했다. 다섯째로 세상물정 모르는 거다. 히데요시가 강력했던 이유는 세상에 온갖 못볼꼴 다보고 단련된 유연한 두뇌회전에 있었다면 히데요리는 왕재교육을 받았고 풍채도 좋았지만 정작 제대로된 전쟁 한번 겪어본적 없고 평생동안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오사카 성 밖으로 나간 적도 없다... 물론 나갈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 사망 플래그가 서는데, 호코지라는 절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범종에 써진 글씨가 화근이 되었다. {{인용문2| 국'''가'''안'''강'''(國'''家'''安'''康'''), '''군신풍'''락('''君臣豊'''樂) }} 절에 있는 범종 글귀를 이리 썼다가 가(家)강(康)을 둘로 쪼개버렸다고 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허리를 잘라 죽인다고 저주한 혐의와 군신풍(君臣豊)을 풍신군(豊臣君)으로 읽어서 도요토미 가문이 천황 자리를 찬탈한다는 혐의가 뒤집어씌워졌다. 물론 이 글은 순전히 억지 해석이었고 히데요리가 쓴 것도 아니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후였다. 무슨 수를 써도 살 방법이 없었던 거다. 그리고 오사카성 전투가 벌어졌는데 처음에는 히데요시 유산도 무진장 많고 이에야스에게 반감을 품고 오사카로 온 헬본의 이름난 무사들도 많았던 데다가 오사카성이 히데요시가 큰돈 써서 만든 훌륭한 요새였던 까닭에 초반에는 잘 싸웠지만. 바지사장 히데요리와 실권자 요도도노가 이에야스의 현란한 주둥이 터는 솜씨에 속고, 전쟁을 더 하기도 무서워 쫄보 병신같이 이에야스와 휴전을 하는 병신짓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요토미는 휴전협정을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히데요시가 만든 해자를 철거하는데 이게 결정적이었다. 좆도 없는 히데요리가 이에야스군을 반년 동안 막아낸 이유가 바로 이 해자 때문이었는데 이걸 철거해 버리니 든든한 방패를 잃은 오사카성은 그저 판잣집으로 전락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기 싫어서 떠나갔다. 그리고 해자가 철거된후 이에야스가 히데요리 쪽에 무장해제를 요구했지만 히데요리 쪽은 그것만큼은 거부했고 다시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미 군사도 엄청나게 줄은 데다가 방어력이 형편없어진 오사카성은 금세 함락되었고 결국 히데요리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고 이에야스는 저승길이 외롭지 않게 교토로 도망친 8살짜리 친아들 쿠니마츠도 죽여서 같이 저승길에 보내주었다. 쨌든 위의 10개만 알아도 히데요리는 부모 하나로 인생 모든게 결정된 존나 불쌍한놈.... 물론 달리 생각해보면 그 부모 덕분에 그 짧은 인생이라도 살은 놈이다. 다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도망쳤다는 소문이 수십 년동안 돌았다. {{진실}} 근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씹트롤의 [[임진왜란]]은 얘도 연좌해서 처벌해야 할 정도로 중범죄인건 틀림없다. 사실 히데요리는 죽을 때까지 엄마 치맛바람에서 놀아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입장에서는 [[조선]]과 다시 외교를 해야 했기에 조선에 속죄할 명분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도요토미 자체를 말살시켜 없애기'''였다. 그 일환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구족을 완전히 멸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에 [[수류탄]]을 투척해서 폭파시켜 버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조선한테 [[임진왜란|죄]]를 용서받는데 7년씩이나 걸렸다.''' {{쌤통}} 도요토미 가문의 구성원들을 정말 잘 뒈졌다. 이 새끼들이 뒈져야 조선과 일본이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임진왜란]]이 엄청나게 큰 죄이기 때문이다. 이 새끼네 애비가 싼 분탕질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조선인 및 일본인이 떼몰상당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정도조차 과분하다. 물론 히데요리도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건 정발, 송상현, 윤흥신도 그렇게 죽기 싫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정발 송상현 윤흥신 같이 능력도 뛰어나고 인품도 괜찮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이 거의 뒷통수 후려맞는 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죽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만 억울하고 정발 송상현 윤흥신은 하나도 안 억울한가? 그걸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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