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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성립이전=== 성립이전은 [[프로이센]] 주도의 [[북독일 연방]] 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주도의 [[독일 연방]]을 참고. ===성립=== 외교의 천재 명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 왕국은 이른바 철혈정책으로 불리는 군국주의 노선과 관치경제체제, 사회복지 제도로 좌파들을 좌절시키며 국력을 배양한다. 독일 통일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던 와중,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여 소독일 주의에 입각해 통일 독일에 다문화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배제하는데 성공한다.(보오전쟁) 오스트리아를 독일에서 내쫓은 뒤, [[나폴레옹]] 3세가 이끌던 프랑스 제국(제2제정) 을 꺽지 않는다면 독일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비스마르크는 엠스전보사건을 주작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단숨에 프랑스 군을 격파, 스당요새에 갖혀있던 황제를 사로잡아 전쟁에서 승리한다.(보불전쟁) 그리고 베르사유궁전에서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의 성립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빌헬름2세의 등장=== 빌헬름 1세는 매우 장수해서 증손자까지 보고 갔다. 뒤는 아들인 프리드리히 3세가 이었지만, 후두암으로 즉위 90일만에 승하하여 그의 아들 빌헬름 2세가 즉위한다. 팔병신에 입도 싼 빌헬름 2세는 프랑스 왕따 시키고 영국 개입 못하게 하기로 요약가능한 비스마르크 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젊은 혈기에 함대도 지르고 식민지도 따먹고 싶었던 것. 하지만 비스마르크 실각이후 전함 덕질은 영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빌헬름 병신의 의도와 달리 [[영국]]의 심기를 제대로 찔렀고 보불전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에 석탄산지인 알자스 로렌을 강탈당한 프랑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영불은 급격히 가까워 졌다. 그리고 이전부터 [[러시아]]를 어떻게든 안 건드리려던 비스마르크의 노력과 달리 황제는 러시아를 좇같이 봤으므로 결국 전쟁 이전부터 영불러 3국의 동맹이 이루어져 일찌감치 동서로 포위된 양면전쟁을 강요받게 되었다. 한마디로 적을 쳐 만들어내는 외교정책을 부린것이다. ===4촌들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군주들은 대부분 왕실결혼으로 얽히고 섥혔는데 이건 유럽의 할매라는 이명을 가진 빅토리아 여왕 탓이다. 그래서 빌헬름 2세는 친척들 끼리 있을때 불리던 별명은 [[빌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4촌인 조지 5세를 사탄이라고 비난했다. 영빠인 주제에... 츤데레? 여튼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가 되어 가고 있었고 프란시스 가브릴로프가 사라예보란 동네에가서 거기에 성냥하나를 던져 넣었고 터질게 드디어 터진다. ===몰락=== 결국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경제는 똥망하고 황제는 권력을 잃고 군부독재국가 비스므리하게 되어간다. 거기다가 드디어 독일의 무제한 잠수한 작전때문에 루시타니아호가 가라앉고, 연합국이 망하면 돈을 못받아서 경제 파탄날까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고 완전히 멸망이 확정된다. 1918년, 수병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11월 혁명이다. 거기다가 군부마저 독일에서 황제를 킥밴시키는 사태가 되자 독일제국은 멸망했다. 사실 빌헬름2세를 연합국은 전범으로 지목하고 강화협상을 그와 하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린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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