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드레드노트급의 등장== 1903년-1904년 일본이 먼저 올빅건 설계사상으로 사쓰마급 전함을 설계했으나 기술 부족으로 준노급 전함으로 만족해야 했다. 1905년 1월, 피셔 제독에 의해 영국 해군 설계 위원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위원회 내에서는 포탑 배열에 관한 고찰을 거치고 그에 따라서 10문의 12인치 포를 주포로 삼고 27문의 3인치(76 mm) 포를 부포로 삼는 설계안이 결정 되었다. 또한 영국 해군은 당시로선 지금까지 대형 전함에 쓰지 못했던 증기 터빈을 도입할것을 추진 했으며 이는 21노트(39 km/h)로 다른 전노급 전함과 주력함들 보다 1~2 노트(4~6km/h) 앞서나갔다.<ref>1884년에 영국에 기술자인 찰스 앨저넌 파슨스에 의해 발명 된것으로 증기선 터비니아와 영국 [[구축함]]인 HMS 바이퍼, HMS 코브라에 장착된 적이 있었다</ref> 그렇게 1906년 2월 10일에 진수를 해서 1906년 10월 3일에 취역하게 되는데 그 이름은 바로 'HMS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였다. ===HMS 드레드노트=== 총 18,410톤급(만재 21,060톤)의 배수량을 지녔던 이 전함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전함이였으며 일제사격시 다른 국가의 전함들을 압도할 수 있는 성능을 지닌 전함이였다. 성능이 엄청 뛰어나서 개발 당시에는 전노급 전함을 포함해서 다른 군함들을 구식으로 만들 정도로 도태가 되거나 다른 군비경쟁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피셔 제독의 강력한 추진 땜에 결국 건조가 되었고 등장 이후에는 우려가 실현되서 이 전함의 컨셉을 이어 받은 전함들이 많은 국가에서 건조 되어 건함 경쟁을 일으켰고 전노급 전함과 당시 표준이라고 불렸던 군함들을 전부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이후 이보다 더 강력한 전함들이 나타나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2선에 물러 났는데 그래도 업적은 없지 않아서 1915년에 [[독일 제국]]의 [[유보트]]를 들이받아서 격침을 한 수훈을 낳았다. 이는 1차 대전에서 유일하게 전함이 잠수함을 잡은 사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전노급 전함들과 함께 제3전함전대의 기함으로 활동 했으며 종전 이후 1919년에 퇴역을 하게 된다. 이름의 유래는 공포를 뜻하는 'Dread'와 없음을 뜻하는 'nought'라는 단어를 합친 합성어였는데 직역하자면 '두려움 따윈 없다'라는 뜻이였다. 그 이전에도 드레드노트의 이름을 쓴 군함이 있었고 이 전함은 6대 드레드노트였다. 그 이후 영국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에 이 이름이 붙힌다. ===다른 국가의 영향=== 앞서 말했듯이 HMS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많은 국가의 군함들을 거의 퇴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을 이 전함을 기준으로 건함 경쟁을 일으켰으며 이 전함에서 영향을 받은 전함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한다. [[일본 제국 해군|좆본 제국 해군]]에서는 [[공고급 순양전함]] 도입 이후 드레드노트급을 기초로 설계를 했으며 이는 [[야마토급 호텔]]까지도 이어진다. 그리고 [[천조국]]에서는 8문의 12인치 포가 장착된 천조국 최초의 노급 전함인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 부터 시작해서 드레드노트급의 컨셉을 이어가는 전함들을 많이 건조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