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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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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20왕조 파라오}} {| class="wikitable" ! colspan="5" style="text-align:center;background-color:#BDB76B; color:#A0522D" | '''{{크기|4|[[이집트 제20왕조|{{색|#A0522D|이집트 제20왕조}}]]의 파라오}}''' |- | style="text-align:center;background-color:white; color:black"| [[세트나크테]] | style="text-align:center;background-color:white; color:black"| → | style="text-align:center;background-color:#BDB76B; color:#A0522D" | '''람세스 3세''' | style="text-align:center;background-color:white; color:black"| → | style="text-align:center;background-color:white; color:black"| [[람세스 4세]] |} {| class="wikitable" !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A0522D;background-color: #BDB76B;" | '''재위기간''' |- | [[기원전 1186년]] ~ [[기원전 1155년]] |} {{성군}} {{빛과어둠}} {{마지막 희망}} == 개요 == [[기원전 1217년]] ~ [[기원전 1155년]] (62세) [[이집트 제20왕조]]의 제2대 파라오.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 람세스 3세를 끝으로 이집트는 [[이집트 문명]]으로서의 전성기를 두 번 다시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20왕조의 전성기인 람세스 3세 치세가 끝난 후 이집트는 계속 쇠락하게 되고, [[이집트 제3중간기]]와 [[이집트 말기 왕조]] 때부터는 아예 이민족의 지배가 많아지면서 고대 이집트인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집트 역사의 전성기가 다시 오기는 왔지만, 그 때는 이미 이집트 문명이 멸망한 후였고 [[파티마 왕조]]나 [[아이유브 왕조]] 같은 이슬람 제국으로 변모해 있었다. == 파라오가 되기 전 == [[람세스 2세]]가 죽기 4년 전, 즉 [[메르넵타]]가 대신 통치하던 [[기원전 1217년]]에 대귀족 [[세트나크테]]의 아들로 태어났다. 4살 때 람세스 2세가 죽었고 14살 때 메르넵타도 죽었다. 10대에서 20대 시절에는 이집트에서 왕위를 두고 큰 다툼이 일어났다. [[아멘메세스]]가 [[세티 2세]]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든지, [[십타]]가 일찍 죽어 양어머니 [[투스레트]]가 대신 즉위한다든지... 28살이 되던 [[기원전 1189년]], 아버지인 세트나크테가 투스레트를 축출하고 새 왕조 제20왕조를 개창했다. 이렇게 그는 갑자기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었다. 아버지는 3년 동안 아들을 위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의 기반을 다져놓았고, 그렇게 안정화된 이집트는 [[기원전 1186년]] 세트나크테가 죽으면서 람세스 3세에게 물려졌다. == 치세 == 람세스 3세가 파라오로 일하던 [[기원전 12세기]] 초중반, 지중해 일대에서는 국제정치의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기후 변화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인해 북쪽에 살던 많은 [[바다 민족]]들이 떼거지로 지중해 일대를 박살내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미케네 문명]]과 [[히타이트]] 제국이 바다 민족의 개지랄을 쳐맞고 반병신이 되어 있었다. [[기원전 1178년]] 마침내 히타이트 제국이 바다 민족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 그리고 이집트 북부 해안에서도 깔랑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람세스 3세는 바다 민족과의 전쟁을 벌였다. 근접전에서 매우 강력했던 이집트는 해전 때 갈고리를 던져 바다민족의 배를 이집트 해군 배와 연결시킨 다음 바다민족 배에 올라서 바다민족을 모조리 쳐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집트는 [[기원전 1170년대]]와 [[기원전 1160년대]]에 잠시 안정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경제 침체가 뒤따라 일어났는데, 바다 민족, 리비아, 누비아와의 전쟁으로 국고가 비어버리자 월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기원전 1157년]], 계속된 경제 침체와 월급 체납으로 인해 빡친 노동자들이 역사 기록 최초의 [[파업]]을 벌였다. 아이슬란드에서 헤클라 화산이 폭발했다. 이때 화산재가 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덮어버리면서 식물 성장을 방해했다. 농업 강국인 이집트도 이 타격을 직빵으로 받아서 좆되어버렸다. 이렇게 조금씩 민심이 박살나던 시기, [[기원전 1150년대]] 중반 람세스 3세의 부인 중 한 명인 티예와 그 아들 펜타웨레트가 람세스 3세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람세스 4세]]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람세스 3세는 즉시 죽지는 않았으나 치명상을 입었고, 암살범들은 전부 체포당했다. 얼마 뒤 치명상으로 인해 [[기원전 1155년]] 람세스 3세는 사망했다. 다음 파라오로 지명되어 있던 [[람세스 4세]]가 즉위해 암살범들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 둘러보기 == {{기원전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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