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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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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 제위 초반에 전쟁만 했다하면 영토를 날려먹는등 실패만 일삼은것은 본래 그녀는 왕위계승권과 거리가 멀어서 당대 공주님들이 받을 신부수업이나 받았지 제왕학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본래 게르만권은 프랑크-신성로마제국 이래로 살리카법때문에 남자에게만 제위가 가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고 그때문에 뒤에 설명하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터지는것이다.거기다가 본래 물려받을 남자형제가 있었다.그런데 위로 오빠두명은 일찍 요절했지만 부왕 카를6세는 마리아가 장성했어도 아들낳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뒤로 남동생 두명이 계승권을 가졌으나 둘다 요절하면서 덜컥 나라를 물려받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된것이다. 그렇다고 왕위에 오른뒤 곧바로 임신+출산의 반복 크리라 제왕학을 속성으로라도 배울 시간은 그녀에게 없었고 어렸을적엔 조신한 공주님으로 궁궐에서만 자랐고 성인이 된후엔 임신+출산머신이 되어 또 궁궐에만 갖혀살다 보니 그덕에 경험도 태부족이었다. 그래서 나선게 남편이었고 이때 남편이 어떻게든 오스트리아가 유리하게 협상하려 노오력했지만 그때마다 이여자가 참견했고 그리고 망했다. 이후 질렸는지 남편인 프란츠 황제도 정치에 관심끊고 남들 정계입문할 나이에 일찌감치 은퇴생활이나 즐기면서 꿀빨게된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이 여자 시절에 전쟁도 꽤 치르게 된다. 굵직한거만 보자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과 18세기의 제1차세대전 이라는 7년전쟁이다. 즉위초, 아직 왕으로선 뉴비였던 시절, 이때가 이여자 23살때 였다. 거기다 임신중이었고..마리아 테레지아 즉위이전 부왕인 카를 6세의 말년의 군사적 실패때문에 세르비아와 왈라키아를 오스만에게 상실하는등의 이유로 오스트리아를 만만하게 보는 기류가 국제적으로 생겼다. 거기다가 갑자기 즉위한 어린 여자애라고 다들 깔봐서 일어난것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다. 배경은 합스부르크 가의 직계 계승자가 될 아들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일찌감치 죽어버려서 큰딸인 이 여자만 남았기 때문에, 이제 합스부르크 왕가는 단절되게 되며 가까운 친척가문이 상속받게된다. 이를 막고자 부왕이 국사조칙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신롬과 독일왕작외엔(여계 승계를 금한 구 프랑크 제국령 국가들이 따르는 살리카법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대공위와 헝가리 왕위등을 이 여자가 계승하여 합스부르크 왕실의 영토가 다른가문에 상속되는것을 막으려 했으며, 부왕의 생전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 여자가 즉위하고 나자 사방에서 테클을 걸기 시작한다. 그 중 한사람이 마리아와 혼담도 오갔다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다. 대왕은 자기 부왕이 생전에 승인했던 국사조칙 승인을 거부하면서, 그 대가로 슐레지엔을 내놓을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꿀땅인 슐레지엔을 오스트리아가 놔줄정도로 호구는 아니었으므로 전쟁이 발발, 여기에 신롬과 오스트리아 제위를 요구하는 바이에른, 프러시아 동맹인 스웨덴, 프랑스, 덩달아 프랑스 친척인 스페인과 나폴리까지 이탈리아 전선으로 참전한다. 이때 오스트리아의 동맹은 러시아와 전통의 동맹 영국이 참전한다. 이때 그녀는 헝가리 왕국의 사도왕을 겸임하는 중이었는데(동군연합) 헝가리 왕국은 비록 수백년간 오스만과의 대결로 황폐화 되었지만 그래도 지도 펴보면 본토(?)인 오스트리아보다 크기는 더 크단걸 알수있다.아닌게 아니라 이 헝가리를 오스만으로부터 탈취함으로서 국토면적에서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프랑스와 맞먹게 되었다. 이때문에 헝가리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낳자마자 헝가리 귀족들한테 달려가서 따끈따끈한(?) 아들을 들이밀며 지지를 호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림으로도 남겨져 있는데 신혼(?)때 아직 안 뚱뚱한 마리아 테레지아를 볼수있다. 그러나 결과는 물이오를대로 오른 머왕이 오스트리아 군을 보이는 족족 다 쳐바르며 승리하여 공업지역 슐레지엔을 냠냠. 이 여자에게는 세수의 22퍼인 꿀땅이 날아가서 오지게 속이 타들어 갔을것이다. ====7년전쟁==== 이에 빡친 마리아 테레지아는 복수를 결심한다. 지난전쟁에서 식민지 방어 때문에 머륙에서 전투에 소극적이었던 영국대신 복수전을 위해서 머륙 전통의 강호이자 원수지간인 브르봉 가문의 프랑스에 접근하였고 ([[동맹의 역전]]) 이를 위해 프랑스 왕세자빈으로 11째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로 알려진 걔를 시집보냈다. 그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고 머왕과 한판 더 붙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7년전쟁이다. 이때 프랑스의 마담 퐁피두르(후궁)와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 와 3부인 동맹맺고 프러시아는 3면에서 포위되는 형세에 놓았으며 프리드리히 머왕을 자살직전까지 극딜하나 엘리자베타 여왕이 급사하고 왠 독빠 표트르 3세가 즉위하면서 나가리 되었다. ====폴란드 분할(1차)==== 그녀의 업적중 하나가 바로 폴란드 분할이다. 폴란드는 국왕이 있었지만 선출제로, 사실상 귀족 공화제 국가로 운영되는 나라였다. 중세의 강호였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마리아 테레지아 연간쯤 되면 나라가 망해가는 중이었고, 이걸 어떻게든 타계하고자 국왕이 개혁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폴란드 귀족들은 나라가 멸망해도 자기자신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러시아를 끌여들어 간신히 제압한다. 문젠 엄격 진지 근엄한 성격의 도덕 주의자였던 터라 까였다. 프리드리히 머왕은 '''저여잔 팡팡 울면서도 먹을껀 다 먹는 여자'''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로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강해졌다. 이렇게 된다면 다음 선거에서 러시아 제국의 여제인 예카테리나 황제가 폴란드 국왕에 즉위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위협으로 느낀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머왕의 주제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머왕이 합의하여 3국이 폴란드를 분할한다. 이로서 폴란드는 레알 병신국가로 추락했고 이후 나라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시도는 귀족들의 반란과 이들을 등에 엎은 외세에 의해 좌절되고 이후 2차 분할을 거쳐 3차분할로 완전히 멸망해 사라진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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