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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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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이 여자 시절에 전쟁도 꽤 치르게 된다. 굵직한거만 보자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과 18세기의 제1차세대전 이라는 7년전쟁이다. 즉위초, 아직 왕으로선 뉴비였던 시절, 이때가 이여자 23살때 였다. 거기다 임신중이었고..마리아 테레지아 즉위이전 부왕인 카를 6세의 말년의 군사적 실패때문에 세르비아와 왈라키아를 오스만에게 상실하는등의 이유로 오스트리아를 만만하게 보는 기류가 국제적으로 생겼다. 거기다가 갑자기 즉위한 어린 여자애라고 다들 깔봐서 일어난것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다. 배경은 합스부르크 가의 직계 계승자가 될 아들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일찌감치 죽어버려서 큰딸인 이 여자만 남았기 때문에, 이제 합스부르크 왕가는 단절되게 되며 가까운 친척가문이 상속받게된다. 이를 막고자 부왕이 국사조칙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신롬과 독일왕작외엔(여계 승계를 금한 구 프랑크 제국령 국가들이 따르는 살리카법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대공위와 헝가리 왕위등을 이 여자가 계승하여 합스부르크 왕실의 영토가 다른가문에 상속되는것을 막으려 했으며, 부왕의 생전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 여자가 즉위하고 나자 사방에서 테클을 걸기 시작한다. 그 중 한사람이 마리아와 혼담도 오갔다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다. 대왕은 자기 부왕이 생전에 승인했던 국사조칙 승인을 거부하면서, 그 대가로 슐레지엔을 내놓을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꿀땅인 슐레지엔을 오스트리아가 놔줄정도로 호구는 아니었으므로 전쟁이 발발, 여기에 신롬과 오스트리아 제위를 요구하는 바이에른, 프러시아 동맹인 스웨덴, 프랑스, 덩달아 프랑스 친척인 스페인과 나폴리까지 이탈리아 전선으로 참전한다. 이때 오스트리아의 동맹은 러시아와 전통의 동맹 영국이 참전한다. 이때 그녀는 헝가리 왕국의 사도왕을 겸임하는 중이었는데(동군연합) 헝가리 왕국은 비록 수백년간 오스만과의 대결로 황폐화 되었지만 그래도 지도 펴보면 본토(?)인 오스트리아보다 크기는 더 크단걸 알수있다.아닌게 아니라 이 헝가리를 오스만으로부터 탈취함으로서 국토면적에서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프랑스와 맞먹게 되었다. 이때문에 헝가리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낳자마자 헝가리 귀족들한테 달려가서 따끈따끈한(?) 아들을 들이밀며 지지를 호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림으로도 남겨져 있는데 신혼(?)때 아직 안 뚱뚱한 마리아 테레지아를 볼수있다. 그러나 결과는 물이오를대로 오른 머왕이 오스트리아 군을 보이는 족족 다 쳐바르며 승리하여 공업지역 슐레지엔을 냠냠. 이 여자에게는 세수의 22퍼인 꿀땅이 날아가서 오지게 속이 타들어 갔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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