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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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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 어째 전쟁만 하면 털리는거 같지만, 상대가 나폴레옹과 히틀러 마저도 존경을 표하는 프리드리히 머왕이 이끄는 역시 나폴레옹이 말한 대포알에서 태어난 국가라는 군국주의 머장 프러시아란게 운이 없었다.(+ 희대의 병신 표트르 3세도 잊지말자.) 그녀는 전후 피해를 수습하며 엄격 근엄 진지한 도덕주의자 답게 보수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옆나라 프랑스의 루이 15세, 16세가 병신짓만 일삼다가 나라를 말아먹고 급기야 자기 가족까지 단두대로 이승에서 하직시키고 더불어 왕조를 멸망시킨것과는 대조적으로 나름 나라를 잘 굴렸다. *유럽에선 가장 빠르게 의무교육제도를 법제화 하고 전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한다. 그리고 통일된 교과서를 배포하였다.<br/>이후 의무교육을 아예 헌법에 박은건 나폴레옹 법전 부터라고. *엄근진한 도덕주의자 답게 창녀와 포주들을 잡아 족치고 성매매또한 금지시켰다. 잡혀들간 사람들은 쳐맞고 강제 노동을 강요당했다고 한다.<br/>사스가 히틀러가 태어난 나라의 여왕님 답다. *그녀 자신은 수꼴이지만, 밑에 신하들이 계몽주의자들이 늘어나자 이에 따랐으므로 진보적 정책을 펼쳤다. 헬반도의 어떤 공주님관 다른 모습이다. 남편이 40대에 죽자 황제 물려받은 아들을 갈궈댔다. 근데 엄마가 유산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까라면 까야지. 근데 아들은 엄마와 달리 계몽주의자였다.아마 이집구석도 아침마다 밥먹다 정치이야기 튀어나오면 분위기 작살났을듯 싶다... 실재로 서로 퇴위,실각 시키겠다고 협박한거 보면 가족끼리 정치이념 다르면 정치로 대화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알수있다. 여기에 그녀의 남편이 재정적으로는 환상적인 능력자인 덕도 있었다. 7년 전쟁을 하면서 오스트리아는 11년치 국가 수입을 다 때려박았다. 거기에 승리도 못했으니 얻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인 프란츠 1세가 재정적 수환을 발휘해서 이걸 다 덮어내고 오스트리아는 왕실 예산을 편성하지 않음에도 후손들이 이 때 벌어들인 돈의 이자만 써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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