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파일:muratat13t18t22.jpg]] ==개요== [[청일전쟁]] 당시,[[일본]]군에서 사용하던 [[소총]]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이 자국 기술로 만든 볼트액션 라이플 1897년 개발된 30년식 보병총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쓰였다. 우금치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을 때려잡던 3신기(대포, 개틀링 기관총, 무라타 소총) 중 하나로 똥수저들이 아무리 노오오오오오력해서 금수저를 때려잡으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무기이다. ==역사== 무라타 소총을 생산하기전 초기의 일본제국군은 프랑스산 샤스포 소총과 영국 스나이더 엔필드 및 스펜서 소총에 의존해왔다. 보신 전쟁 (Bosihn war)에서의 전투경험은, 표준화된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일본군은 프랑스의 금속 탄환 디자인에 큰 인상을 받았다. 무라타 소총의 디자인 및 탄약의 디자인은 일본제국군의 보병장인 무라타 쓰네요시가 발명했다. 메이지 천황 시대에 채택이된 이 소총은 13호 모델로 지정이 되어 1880년에 11MM 크기의 13호 싱글샷 볼트액션 소총으로 생산됐다. 기타 소소한 개량으로 1885년 13호 소총이 18호 소총으로 재지정됐고 18호 소총에서 이것저것또 개선점을 개선해 마지막으로 Type22 무라타 소총이 탄생했다. ==실전배치== 무라타 소총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제국군의 제식 화기였다. 일본군은 개선됀 22식 무라타 소총조차도 수많은 결함이 있다고 봐서 1898년에 설계된 30식 아리사카 소총으로 교체하고 무연화약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30식 아리사카는 분명히 어떤 조건에서도 잘 작동했지만 생산된 수량이 많지않아, 1904-1905년 러일전쟁의 후반에 전선에 참전한 많은 일본제국군 보병들은 무라타 소총을 계속 사용했다. 필리핀에서도 사용됐는데 1896년에서 1897년가지 밀수조직을 통해 카티푸난(KKK, 반 스페인단체)에 의해 사용됐다. 필리핀인들은 필리핀 혁명 기간동안 이 소총으로 스페인군에 맞서싸웠다. ==여담== 놀랍게도 실제로 일본 깡촌 창고나 다락방을 뒤지다보면 가끔 나오는편이다. 동유럽에서는 땅을파면 모신나강이 나오지만 일본 깡촌의 창고나 다락방을 뒤지다보면 무라타 소총이 나올수있다. 실제로 몇몇 국내 커뮤에서도 일본에서 거주하던 사람이 창고에서 무라타 소총 발견했다고 인증까지한 사례도 있었다. 아리사카 나온 다음에 남는 놈은 엽총으로 풀려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도 포수들이 무라타 썼다가 한국전쟁 터지고 난 뒤에 싹 다 회수되거나 폐기 됨. ==제원== *구경 : 11X60MM , 8X53MM *사용 탄환 : 11X60MM 무라타 , 8X53MM 무라타 *급탄 : 1발 *작동방식 : 볼트액션 *전장 : 1,294MM *중량 : 4.9kg *발사속도 : *총구속도 : 435m/s *유효사거리 : ? ==관련정보== {{일본군무기}} {{1대전협상군무기}} [[분류:밀리터리]] [[분류:무기]] [[분류:소총]]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1대전협상군무기 (편집) 틀:고치기 (편집) 틀:일본군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