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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2단원}} {{성인}} {{도}} {{공산주의}} {{공돌이}} {{금손}} 야! 밥묵자! [[스까듭밥|붓싼사람들은 만난거 있으면 다 같이 스까묵는다 아이가]] 어릴때 천한 노동자 출신이라고 하고 누구는 아랍이나 동남아에서 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범죄자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기록이 너무 단편적이기 때문. ㄴ 이런 설이 있는 이유는 묵(옛날에 글 쓸때 사용하던 먹)이라는 성씨 때문으로, 노동자나 외국인설은 "얼굴이 검다", 범죄자설은 "얼굴에 문신 새기는 묵형을 받았다"라고 해석했기 때문에 나왔다.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노동과 분업의 중요성을 설파했으며 군주한테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고 절약하면서 백성을 위해 살라고 설파했다. 본인도 기술자였기 때문에 실용적인 것들을 많이 만들었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집,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듯, 타인, 타인의 집, 타인의 국가를 사랑하라는 겸애설을 제창했다. 때문에 공산주의와 아가페 사상과 어느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고대의 공산주의자, 동방의 예수로 불리기도 한다. 덕분에 당대 백성들 사이에선 인기가 높아 맹자가 부들부들거리며 직접 디스할 정도였지만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기록들을 말살했고 한나라가 유교 이념을 채택한 뒤론 오랜 기간 잊혀졌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선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공자나 맹자보다 묵자가 더 평가가 높고 공감할 건덕지도 넘쳐난다. ==묵자의 겸애설== 개인주의 사상가 [[양주]]와는 정반대로 자기 부모를 사랑하듯 남의 부모를 사랑하라고 했으며 내 발목이 짤려서 세상이 좋아진다면 짤려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유가의 별애를 이기적이라고 까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나 딴 사람이나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을 주장했다. 맹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가사상가들이 이걸 듣고 지 애비랑 남 애비가 똑같은 패륜아 새끼라고 비판하였으나 묵자가 말하길 "그럼 너가 다른 사람한테 부모님을 부탁할때 자신의 가족부터 챙기는 유가사상을 따르는 사람한테 맡길거냐 아니면 나처럼 모두를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맡길 것이냐. 너희도 곧 내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엄청난 말을 하였으나 인간의 특징 상 자기 부모부터 챙기기로 되어있으니 결국 이 사상이 실현되지 못한다. 근데 공감하는 사람은 많다. 또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사상들 대부분은 어떻게 적을 쳐부술까, 어떻게 백성 끌어모을까 하는 연구였으나 묵자는 천하통일이니 세계정복이니 다 집어치우고 이미 생긴 나라들은 서로 존중해주며 평화롭게 살자는 [[국제 연합|시대를 앞서간 주장]]을 했다. 묵가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가리 파이터가 아닌 실천하는 겸애주의자가 되기 위해 서로 모여서 호신 무술을 연마하고 수성 병법을 익히며 공방전이 벌어지면 방어측에 서서 싸우기도 했다. 아예 직접 전쟁을 일으킨 국가를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으며 오죽하면 수성측에는 우리 묵가 특공대가 있다고 경고하니까 공격측이 틀렸구나하며 전쟁을 포기한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요즘 말로 따지자면 혐영 현실버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위아더월드 사상 때문에 묵가는 진나라 이래 통일왕조들에게 탄압받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지배층들은 백성들이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만을 위해 애국하기를 원했으니까. 또 맞는 말이긴 한데 실천하려니 인간 욕심 때문에 제대로 실천 안되는 점 때문에 쇠퇴한 게 컸다. 위에서 얘기한 의협 집단도 점차 변질되면서 그냥 단순히 돈 밝히는 보통 용병처럼 변했다. ==유교의 허례허식 비판== 유교에서 3년이나 제사를 치르는 것을 비판하였고 3달상을 주장했다. 지금 보면 3달도 상당히 긴 기간이지만 당시에는 3달상을 하면 후레자식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백성들 농사짓고 살기도 힘든데 3년이란 세월동안 치르면 노동력 낭비이니 매우 힘들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유교의 "예"를 중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백성의 이익이 될때 곧 "의"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 예악을 중시하는 유가와 달리 '비악'(非樂)이라고 해서 예악이란 게 가오만 잡는다며 쓸데없다고 깠다. 정확히는 그저 허례허식이나 놀고 먹는데 쓰이는 예악을 싫어한 것으로 적당한 예악은 심신을 가다듬어 노동력 재생산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지금 보면 공자보다 묵자가 백번천번 옳았다. 제사라는 거 땜시 좆나 맛없는 음식들이 가득 생기고 그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가 존나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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