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편집하기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국부}} {{애국지사}} {{성인}} {{영웅}} {{죽창}} {{대국적}} {{총살}} [[파일:이달고 슨상니뮤.jpg]]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 == 개요 == 멕시코의 혁명가이자 성직자. 이달고 신부로도 불리기도 한다. 헬조센에서 홍경래가 좆같은 조정을 향해 죽창을 들고 일어날동안, 이 분은 크리오요의 신분임에도 케레타로에서 독립 전쟁을 계획 후 1810년 9월 16일, 과나후아토 돌로레스 이달고의 교회에서 고통받는 자(Dolores)들의 외침을 시작으로 나폴레옹 따까리 짓이나 하는 대국적이지 못한 스페인 총독부에 선인장창을 날렸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던 같은 계층 크리오요나 교회 신자들부터, 라티노들과 인디오 원주민들 등의 최하위 계층까지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 훗날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이그나시오 아옌데와 호세 오르티스 데 도밍게스도 봉기에 가담한다. 거의 6000에 달하는 모든 계층이 모인 독립군을 이끌고 스페인 군대와 항전해나가며 수도 문턱까지 다다랐다. 중간에 주교한테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좆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군이 창설한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훈련, 장비, 기강 등이 열악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졸렬한 크리오요 새끼들이 자기네 이권 신경쓰느라 통수치고 스페인군에 붙어버린다. 결국 칼데론 다리에서 패배 후 미국으로 튀다 1811년 3월 21일 알타 칼리포르니아에서 체포돼서 치와와로 끌려갔다. 거기서 종교 재판과 군사 재판을 거치고 사제직이 박탈됐으며,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1811년 7월 30일 총살형에 처해져서 그토록 원하던 미국 이민에 성공하셨다. 스페인 당국은 무슨 조선족 새끼도 아니고 이달고 신부니뮤의 시체를 갈가리 찢은 뒤 본보기로 수급을 거리에다가 내걸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부
(
편집
)
틀:대국적
(
편집
)
틀:벌집핏자
(
편집
)
틀:성인
(
편집
)
틀:알림 상자
(
편집
)
틀:애국지사
(
편집
)
틀:영웅
(
편집
)
틀:죽창
(
편집
)
틀:총살
(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