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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파일:'David' by Michelangelo JBU0001.JPG|500픽셀|섬네일|왼쪽| 다비드(David), 1501년~1504년, 높이 5.17m, 피렌체 아카데미 미술관<ref>By Jörg Bittner Unna (자작)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ref>]] <center> '''자유 시민의 다비드''' </center> 일약 스타가 된 미켈란젤로는 시에나 성당과 두오모 성당에서도 작품을 조각하기 시작한다. 조각상 하나를 완성하는데 적어도 1년 이상의 장시간이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다중으로 계약하면서 조각을 하고 있었던 것. 후에 이 작품들은 피렌체 시의회가 의뢰한 작품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아버리게 된다. 당시 피렌체는 시민들의 봉기로 권력을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뒤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 상을 의뢰한 것이었는데, 거인이었던 골리앗을 물리친 다비드의 모습이 권력에 맞서싸운 피렌체의 시민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시의회가 부탁한 다비드 상에 쓰일 대리석은 아고스티노 디 두초라는 조각가가 작업을 하다가 포기하고 방치된 대리석 덩어리이었는데 당시 그 대리석은 높이 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에 오랫동안 방치된 터라 상태가 전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자유시민들을 기리기 위해 계약을 수락하게 된다. <s>메디치 가문의 뒷통수를 후렸다</s> 그렇게 1501년 시작된 조각은 3년여만인 1504년에 완성되었다. 당당하면서도 여유로운 자세에 과하지 않으면서 균형 있게 다부져진 몸매는 아름답기까지 하였으며 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얼굴의 크기와 표정은 과장되어있는데 다비드상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아래에서 목이 빠져라 쳐다보아야 할 관람객들의 시점을 고려해 얼굴을 크게 만들었고 표정을 과장시켜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피렌체 시의회는 이 걸작을 두고 어디에 설치할지에 대해 한동안에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원래는 대성당 상부에 놓일 예정이었으나, 너무나 큰 크기 때문에 옮길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결국은 토론 끝에 피렌체 시청 입구에 있던 도나텔로의 "유디트"를 옮기고 그 자리에 설치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 도나텔로의 작품들을 보며 꿈을 키워나갔었던 미켈란젤로는 시간이 흘러 다비드상으로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밀어내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파일:Hercule et Cacus Bandinelli Florence Signoria.jpg|300픽셀|섬네일|왼쪽| 헤라클레스와 카쿠스(Hercules and Cacus), 반디넬리, 1534년, 높이 5.05m, 피렌체 광장]] [[파일:Donatello-Judith and Holofernes-Palazzo Vecchio.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Judith and Holofernes), 도나텔로, 1460년, 높이 236 cm, 피렌체 광장]] 다비드상이 설치된 후에 일화도 흥미로운데, 당시 피렌체 시민들의 봉기에 의해 물러났던 메디치 가문은 머지않아 다시 피렌체를 장악하게 된다.<ref>1513년 즉위한 교황 레오 10세가 바로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당시 메디치 가문의 권력은 막강했다</ref> 1527년에 시민들은 다시 한번 봉기하였고 이때에 여파로 성난 시민들에 의해 다비드 상이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사리가 수리하였다. 아무튼,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를 장악함으로써, 시민들의 편에 섰었던 미켈란젤로의 입장은 난처해지고 만다. 메디치 가문이 장악한 피렌체 정부는 미켈란젤로가 아닌, 친 메디치파 였던 ' 반디넬리' 조각가에게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의뢰하였고,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다비드상 옆에 나란히 세움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지금도 피렌체 광장에가면 다비드상 모작품과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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