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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진지주의}} {{인용문2|[[개소리|이완용은 시대가 낳은 피해자요 희생자였다.]]}} 조선 말의 관료이자 사상가. [[친일파]]이다. 아호는 해악(海惡), 일소(一笑). 조선에서 살았지만 조선사회의 가치관을 모조리 쌩까고 잘먹고 잘살다 죽었다. 이완용이나 박제순 같이 돈에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최남선, 이광수처럼 일본 패망 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 부류와는 달리 소신에 찬 신념형 친일파. [[윤치호]], [[서재필]], [[유길준]]은 조선을 까면서도 조선인에 대한 애정을 못버렸지만 그는 철저하게 조선인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버렸다. 갑신정변 이후 죄 없는 가족들까지 연좌하여 처벌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 그 계기였다.(이전 문서에 얘 가족들이 갑신정변 때 죽었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남의 집 사정을 보고 분노했던 거임) 한마디로 요약해서 헬조센의 현실을 일찍이 깨달은 선각자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이 분이 성인이나. 그건 또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 여승이랑 좋은거 잉야잉야하다가 여승이 자살한 막장스러운 일도 벌였고 헬조센이라 평하면서 선택했던 게 [[헬본]]이었으니. 그 당시 헬본은 인권무시하는 준전체주의 국가였다. 그리고,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데, 만일 그의 주장대로 됐다면, 지금쯤 이보다 훨씬 더한 상황이 예기되었을 듯. 그 당시 헬본에 의해 열화된 게 지금 머한민국이니. 근데 이는 당시 시대 상황을 모르고 한 소리다. 지금이야 헬본의 미개한 짓을 보면서 저렇게 되선 안되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박중양 입장에서는 전근대적이고 [[연좌제]]같은 미개한 걸 남발하는 헬조선보다 헬본이 더 정상적인 국가로 보였을것이다. 그리고 한창 박중양이 일본을 보며 환상을 품던 시기는 군국주의에 미처돌아가는 시기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어보이는 듯한 시기였으니 말이다. 아 물론 여승 죽게 만든건 빼도박도 못하게 실드 못친다 ㄳ 1900년대 초 일본에 처음 유학갈 때부터 1949년 반민특위에 검거될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9221</ref>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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