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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구한말}} {{???}} {{자뻑}} == 개요 == 백범[[김구]]의 일기장 상권은 1929년에 쓰인 것으로 김구의 어린시절부터 [[경술국치]]까지 김구의 성장과 방황에 대해 회고하는 내용이고 하권은 1942년에 쓰인 것으로 김구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회고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상 하권을 통합하고 <나의 소원>까지 합한 최종본이 1947년에 출간되었다. == 기타 == {{냄비받침}} 이걸 학생권장도서로 쳐넣는건 진짜 또라이짓이다. 학교에서는 거의 필독도서 1순위 수준으로 빨아제낀다. 진짜 그대로 믿고 그대로 자라서 [[김구]]를 존나게 빨아줄껀데 생각만해도 소름돋는다. 실제로 이 백범일지 내용을 맹신하다가 극단적 [[민족주의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국뽕]]들의 영원한 바이블 구라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이야기를 100% 진실로 받아들이지 마라. 특히 [[치하포 사건]] 은 쉴드 불가. 김구도 사람이야 사람!!. [[이광수]]가 썼다던데 그거야 20세기 이야기고 2000년대부터는 원본이 상당히 복원됐다. 그래도 사료로는 가치가 있다. 김구의 내면을 알 수 있는데 예로 김구가 구라를 친 경우는 사실과 검증해서 '김구가 이걸 숨기고 싶어했다.'같은 사실을 추리할 수 있다. 백범일지의 왜곡자체가 김구의 내면을 추리할 1차 사료다. 다만 이게 구라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른 반박 자료가 남아있지가 않아서 어쩔수 없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는 것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건 제목 그대로 일기장이지 역사서가 아니다. 그냥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연의]]를 읽는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게다가 이 일지가 쓰여진 시기가 실제 김구가 겪었던 사건의 시점으로부터 한참 뒤이기때문에 김구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던 시절이라 일부러 사기를 친건지 아니면 정말로 틀딱이라 기억력이 감퇴해서 잘못쓴건지는 김구만이 알겠지 == 여담 == {{망상}} 사실 기록 자체가 100% 전지적 김구 시점+김구의 기억력에 의존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출판을 거듭할수록 여러번 내용이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시대상황에 따라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고 삭제되기도 하고 수정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1929년과 1942년에 김구가 직접 쓴 기록을 친필본이라고 하고 이후 1947년에 수정된 기록을 국사본이라고 하는데 이 둘을 비교해보면 *친필본 : 나는 역적 [[김자점]]의 자손 vs 국사본 : 나는 [[경순왕]]의 자손으로 왕족 참고로 김구는 구 [[안동 김씨]]다. [[경순왕]]의 직계 후손은 맞지만 역적 [[김자점]]의 방계후손 역시 사실이다. 1929년에는 거리낌없이 썼지만 나이들어서는 정치적 이미지를 위해 역적의 후손인걸 숨기고 싶어했던 듯. *1929년에 쓴 친필본에는 1895년 김구가 과거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었던 집안시 일대를 돌아다닐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고구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러다가 국사본에는 "나는 이때 고구려에 대해 잘 몰라서 [[광개토대왕릉비|집안에 있던 고구려비]]를 못 봐서 유감"이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아마 집안시 다녀오고나서 [[신채호]]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들한테 어떻게 민족주의자라는 사람이 집안시를 가면서 고구려비를 한번도 안봤냐고 많이 갈굼당한 듯 *1929년에 쓴 친필본에는 1911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일화를 기술할 때 "예전에 [[이승만]] 박사가 옥중에 도서실을 설치하고 죄수들에게 나라를 부흥시키는 길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박사의 손때와 눈물자국이 반반한 서적을 볼 때에는 배알치 못한 이 박사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이고 같은 독립운동 동지로 생각했었으나 1947년에 쓰여진 국사본에는 이 내용이 삭제되었다. 당시 이승만은 남한단독정부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김구는 이를 결사반대하면서 이때부터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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