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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초기 ===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의 아내 소서노의 아들들인 비류와 온조 형제가 남하해서 비류는 미추홀([[인천광역시|인천]])에 온조는 위례성([[경기도]] [[하남시]] 혹은 [[서울특별시|서울]] [[송파구]])에 십제(十濟)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인천광역시|미추홀]]에 나라를 세운 비류보다 위례성에 도읍을 세운 온조가 결국 더 성공하게 되고 결국 비류의 백성들은 온조에게 투항했고 온조는 비류의 백성들을 받아들이고 국호를 십제(十濟)에서 백제(百濟)로 바꿨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마계 수준 ㅋㅋㅋ === 발전과 전성기 === 점차 영토를 넓히고 중원과 활발하게 교류한 백제는 고이왕 때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율령을 반포했고 관등제를 정비했다. 백제는 점차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점령하면서 발전했다. 결국 근초고왕 시기에는 [[마한]]의 모든 지역들을 점령했다고 한다.<ref>그런데 오히려 근초고왕 이후 무령왕 때 마한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근초고왕 때 마한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하지만 근초고왕이 마한을 완전히 점령했지만 이후에 백제가 크게 타격을 입고 왕권이 위축되면서 마한이 다시 분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ref> 그렇게 백제는 [[경기도]], [[강원도(대한민국)|강원도]] 일부, [[황해도]] 일부, [[충청도]], [[전라도]]<ref>앞서 말했듯이 무령왕 때 마한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있고 호남 지역에서 독자적인 유물들이나 유적들이 출토되는 것을 근거로 근초고왕 때에는 전라도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전라도를 포함한 마한을 완전히 점령했지만 이후에 백제가 크게 타격을 입고 왕권이 위축되면서 마한이 다시 분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ref> 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근거로 당시 백제가 요서(요하 서부)와 산동반도를 경략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현재 학계는 거의 경략설보다 공략설을 밀어주는 것 같다. 때마침 근초고왕이라는 희대의 성군을 만나 삼한을 장악하려는 대업을 이루는 듯 싶었으나... ㄴ 삼한 장악은 개뿔, 가야랑 신라는 핫바지냐? 마한 → 백제, 변한 → 가야, 진한 → 신라라는 공식도 모르는 역알못같은데 근초고왕이 당시 한반도 깡패는 맞지만 백제는 삼한 중 마한밖에 장악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요즘 학계에서는 마한 잔당 세력이 6세기까지 있었다는 설도 있다. ㄴ 삼한 장악이 헛소리라고 볼 수 있는 근거로 삼국사기만 펼쳐봐도 나온다. 독산성(현재 '''경기도''' [[오산시]]) 성주가 성을 통째로 신라에 바치고 투항하니, 근초고왕이 빡돌아서 신라에게 그 성 다시 내놓으라고 문서 보내니 내물왕이 좆까라고 했다. 삼한 장악은 무슨... 근초고왕 덕분에 백제가 강국으로 섰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오히려 신라 입장에선 의자왕이 근초고왕보다 백 배는 더 무서웠을 듯. === 최전성기 === 백제인들이 한강 유역과 전라도 곡창 지대까지 경작하기 시작하자 중국 동쪽 동네 최고 갑부 나라가 되었다. 남조와의 해상 무역을 통해 중국발 선진문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문화 수준이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백제인들은 이때 "엣헴! 옛날 부여도 문명 국가였지만 지금 우리의 성공에 비할 바냐! 이제 부여는 북부여고 우리가 정통 부여(남부여)다 어흠!"거리며 아직 미개하던 고구려와 말갈, 거지 천국 신라, 나라라고 쳐주기도 민망한 왜국 및 기타 등 동쪽 세계에서 중국 다음 가는 문명 수준이 높은 '문명국가'라고 자부하였다. 중국인들도 사람이 사는 해동국가라면 부여, 백제 미만잡으로 여겼다. === 이후, 그리고 멸망 === {{병림픽}} 고구려의 반격과 나제동맹을 맺었던 신라의 수차례에 걸친 치졸한 배신으로 점차 쇠약해졌다. ㄴ 나제동맹 붕괴 원인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먹은 거지만 먼저 공격한 건 백제 성왕 ㄷㄷ 통수 치고 맞았다고 우기는 클라스 ㄴ 이놈 역사 문서마다 돌아다니면서 성왕 선빵론 주장하고 돌아다니는데 관련된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신라야 중국과의 직접 교역 때문에 통수 치고 한강 하류 먹은 게 맞지만 백제가 한강 상류를 먼저 선빵칠 이유가 없다. 이 통궈 놈은 통궈의 지역 기반인 신라의 통수 친 역사가 어지간히 부끄러운가 본데 제발 역사 날조는 좀 하지 말자. ㄴ 백제가 선빵 칠 이유가 없다는 개병신논리 ㅉㅉ 교수한테 가서 그 소리 해봐라. 그렇게 치면 신라는 고구려, 일본이 적대 관계인데 미쳤다고 거기서 포위 당해서 뒤지게 통수를 치냐 ㄴ 아니 시발 관련된 사료가 없다니까 그러네 ㅋㅋ 개병신논리는 무슨. 역으로 해석하면 신라가 고구려, 백제, 왜에 포위 당할 걸 생각하면 신라의 백제 통수도 논리적일 수 있다는 건 아예 생각 못하나? ㄴ 뭐? '관련된 사료가 없다니깐 그러네 ㅋㅋ' 라고? 정신나간 통궈 새끼야 사학은 재판정과 마찬가지로 증거제일주의인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씨부리며 쪼개고 있냐? 어휴 하여간 가축 지능의 통궈 새끼들은 사람의 상식이 안 통한다. ㄴ 타깃 잘못 잡았다. 교수 드립은 무슨ㅋㅋㅋ 시발 역사학자한테 성왕 선빵론 주장하면 졸라 무식하다는 소리 듣는다 미친놈아 ㄴ근데 실제로 학계에서 신라 통수론은 사장되는 추세인건 맞긴 함 신라가 백제 통수 쳐서 한강 하류 장악하고 그것 때문에 성왕이 뒷목 잡고 쓰러졌다가 왜, 가야랑 같이 반격하지만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고 사망한 게 정설이다. 금관가야도 이 당시 신라랑 혼인 동맹 구축하고 있었는데 신라가 나제동맹 통수로 시원하게 깨뜨리는 걸 보고 백제로 다시 돌아섰고, 성왕 선빵론 주장하려면 근거나 좀 갖고 나불대라. 진흥왕 순수비 모르냐? 도대체 현재 교육 과정에서도 나제동맹 깨지는 원인이 진흥왕의 통수인 걸로 가르치고 있는데 어디서 역사 배우고 지껄이는지 참 ㅋㅋ 네이버 백과에서 나제동맹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 걸 우기네ㅋㅋ 통궈야 제발 역사 날조는 하지 말자 아니면 하다못해 좀 알아 보고 글 좀 싸질러라. 맨날 홍어 통수라고 해내는 통궈 입장에서 창피한가본데 어디서 약을 파냐 ㄴ 이상한 건 신라가 한강 하류 먹은 뒤에 성왕 딸이 신라로 시집을 갔던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냐? 참고로, 삼국사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백제에 우호적인 일본서기까지 백제가 스스로 한강 하류를 버렸다는 식으로 서술되어있음 여기서 어떤 신라뽕 새끼가 성왕이 통수를 쳤다고 지 좆대로 역사왜곡하고 다닌다.[http://m.navercast.naver.com/mobile_contents.nhn?rid=77&contents_id=4122] ㄴ 다 필요 없고 통수드립이 무슨 의미가 있냐. 그 시절에는 삼국 간에 동일한 민족 의식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국익을 위해서 한 것이며 실제로도 신의 한 수였으니까. ㄴ KIA~ 민족 의식이 없으면 국익 위해서 동맹 통수 쳐도 된다 이거요? 통수 드립이랑 삼국 간에 동족의식이 없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데. 히틀러만도 못한 새끼 ㅋㅋ 히틀러는 최소한 동맹한테는 의리를 지켰다 ㄴ빡대가리 새끼 히틀러가 의리는 시발ㅋㅋ 독소불가침 조약 통수질ㅇㄷ? ㄴ다 필요없고 백제가 삼한 장악 같은 개드립치고 있네. ㄴ 7세기 초반에 마한 변한 다 먹고 진한 레이드 뛰다가 멸망함. 당나라만 없었어도 충분히 가능했음 ㄴ7세기나 되어서야 마한진한 먹겠다 잉야잉야 거리는 시점에서 백제 삼국통일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란 생각 안드냐 병신아 ㅋㅋㅋ ㄴ 이때 신라가 말 키우는 노비한테 칼 줘서 백제 왕 목 따고 신라 왕궁 북청 계단 밑에 묻은 까닭에 300년 뒤 신라출신이지만 백제 계승 외친 견훤한테 경주대약탈, 왕비개통 당하고 광대에게 병장기 줘서 막으라던 코미디 파티충 신라왕은 자결하였으며 즉석에서 다음 신라왕이 지정되어버리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통수 머가리답게 고려의 1만 대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결사대 보낸 견훤한테 정의구현 당한 것이니 더 비참하다. 근데 이 때문에 간보던 신라호족들이 대거 왕건 편에 붙어 견훤의 자충수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나당 연합군에 불타 사라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사생아 [[좆본]]이 탄생하였다. 솔직히 백제는 첫 수도였던 한강 지역을 털리면서 그냥 듣보잡 최약체 국가였다. ㄴ 백제가 좆라에게 역전당한 건 법흥왕과 진흥왕 때밖에 없다. 구라 치지 말자 씹새야. ㄴ 선덕여왕 때 악의가 아닐까 싶은 삽질로 영토 절반 넘게 급속도로 운지해서 그렇다. 김유신 없었으면 망했을 뻔했다. 신라 입장에선 실로 삼국 통일 기반을 망친 삼국지 유연보다 무능한 개역적인데 한반도에서 최초로 여왕에 오른 보리미엄 탓에 까방권이 있다. 이때부터 수도 이전을 잊을 만하면 한다. 한강 → 웅진 → 사비성 → 익산까지 함 ㄴ 익산으로 천도를 시도하려고 미륵사까지 지어본 건 맞지만 사비의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서 결국 무산되었다. 그러므로 백제 최후의 수도는 사비성이다. 의자왕이 사비에서 털렸는데 익산일 리가. 사실상 헬조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한강 털리고 급하게 수도를 남쪽으로 이전하고부터 왕권이 병신이 되고, 귀족들의 힘이 너무 강해져서 왕들이 항상 왕권 강화를 하기 위해 전쟁도 하고 건물도 짓고 그 지랄이 난 것이다. ㄴ 동성왕, 무령왕, 성왕 모두 왕권이 약했나? 한강을 뺏긴 이후로는 근초고왕 때를 빼면 대부분은 고구려한테 줘팸이나 당했고 고구려 장수왕 때는 개로왕이 무릎 꿇고 우리는 고구려의 속국입니다! 이러고 싹싹 빌어서 겨우 나라를 보존한다. ㄴ 근초고왕 이후에 한강 뺏겼다. 연표부터 외우고 와라. ㄴ 뭔 개소린가 했네. ㄴ 아무래도 술 처먹고 쓴 글 같은데 지워도 되냐 저거? 그 이후로 고구려의 내부 혼란을 틈타 120년의 동맹을 자랑하는 신라와 연합해 한강 땅을 되찾는가 했지만 통수의 달인 신라한테 120년 묵은 뒤통수를 시원하게 얻어맞고 한강은 신라가 처먹는다. 이때 성왕이 지 딸을 신라 왕한테 시집까지 보내면서 위장 전술을 통해 군대를 모으고 왜놈들을 용병으로 구입해서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당시 선봉대가 성왕의 아들이었는데 초반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냄. 이때 성왕이 미쳐서 전쟁 이긴 줄 알았는지 장관급 부하들과 함께 50명의 조촐한 무리로 아들한테 가다가 매복 당한 신라군한테 끔살을 당한다. 그리고 성왕의 목은 신라 궁궐 계단 밑에 묻혀서 신라 공무원들이 항상 지나가면서 밟고 다님. 이후로 크고 작은 전투로 땅을 찔끔찔끔 넓히기는 하지만 이미 너무 커버린 신라한테 녹아 없어진다. ㄴ 그 찔끔찔끔이 의자왕 때 642년 대야성 포함 40여 개 성 함락, 645년 7개 성 함락, 648년 10여 개 성 함락, 649년 다시 7개 성 함락, 655년 30여 개 성 함락이었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잃어버린 백제 영토 + (구) 가야 연맹 영토 + 신라 본토 4분의 1 정도의 땅을 처먹었는데 이게 정말 찔끔찔끔이라면 진흥왕은 나가뒤져야겠네. 참고로 광개토대왕이 일생 동안 함락한 성의 수가 고작 64개다. ㄴ 그 성은 대부분 좆만한 토성들이다. 당시 지도 보면 알겠지만 낙동강도 못 넘고 있다. 대야성은 김품석이 부하들의 마누라들을 건드리다가 빡친 부하들이 문을 열어서 함락된 거지, 실력으로 먹은 것도 아니다... 그마저도 도로 김유신에게 빼앗김. 게다가 가장 중요한 한강 지역은 빼앗지도 못했다. 신라는 전선이 3개고 백제는 신라에 몰빵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해서 백제에 똑같이 전선 한 개 추가해주니 멸망한 거고 ㅅㄱ ㄴ 좆만한 토성은 뭔... 역알못은 역사 왜곡하지 말고 자라 그냥 얘네는 한강 털린 이후로 쭉 병신 짓만 하다가 사라진 국가다. 문화가 발전하긴 했지만 그 외는 그냥 병신짓의 반복임. 바둑에 미쳐서 땡중스파이한테 놀아난 개로왕도 그렇고. ㄴ 두 유 노 무령왕? ㄴ 무왕은? 역알못이 지랄하네. 실제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왕, 성왕, 의자왕도 백제 중흥을 위해 노력했단다. 최후가 비참해서 그렇지. 실제로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하지 않고 자기 명줄 다하고 죽었으면 삼국 통일은 백제가 했을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 ㄴ멸망직전까지 홍어의 조상인 마한 원주민들도 제대로 중앙에서 통제 못하는게 백제였는데 삼국통일은 개뿔이ㅋㅋ 당시 짱깨들한테 조공도 보내면서 후장을 핥아보지만 수나라가 생기기 전까지는 짱깨들이 고구려와 더 친해서 정작 나라가 터지고 있을 때 도움도 못 받음. 북위한테 "고구려는 애미가 없기 때문에 조만간 너거들의 통수를 세게 칠 거다. 그러니까 고구려를 좀 조져달라."라고 국서까지 보냈는데 북위에서 좆까라고 했고 그 이후로 북위랑 빠이빠이했다. 사실상 하는 꼬라지만 보면 전반적으로 조선의 하위호환. ㄴ 백제 무시하지 마라. 그래도 신라 멸망 직전까지 몰았다. 문제는 거기서 짱깨 새끼들이 개입했다는 거지. ㄴ 신라가 여라 동맹을 맺었으면 대신 백제가 신라 코스프레를 하고 물자, 병력 보급 했을 거다. 삼국사기 의자왕편 참조해라. 한강이 수도였던 역사라서 너무 한강에만 집착한 거 같은데 그냥 포기하고 당시 약체였던 신라와 가야를 처먹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병신같이 신라랑 백 년을 넘게 동맹을 맺다 시원하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이미 백제는 망할 나라였다. ㄴ 지랄. 당연히 '약한 신라'와 동맹을 맺어서 '강한 고구려'를 쳐야지, 외교의 기본도 모르는 새끼야. ㄴ 제로섬 게임 모르냐? ㄴ글케 따지면 신라도 진흥왕때 한강대신 백제나 따먹었겠지. 안한 이유가 다 있다. 삼국은 어느 국가던지 서로를 완전히 흡수할 역량까지는 없었고 그래서 삼국시대가 700년을 이어진거다. 짱깨 삼국지는 위촉오중 위가 워낙 압도적이라 금방 통일 한거고 그리고 아라가야(안라국)은 가야 아니냐? 가야를 신라만 먹은 줄 아는 듯? ㄴ 애초에 백제, 신라, 고구려가 서로 한민족이라는 의식도 없고 서로 말만 통하는 다른 나라 사람 취급이었다. ㄴ말도 통했는지 어땠는지 모름 사실 신라한테 통수 맞고 성왕까지 모가지 당하면서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 이후 왕부터 의자왕까지 끊임없이 신라를 갈구면서 많은 영토를 확보했다. 사실상 의자왕 멸망할 때까지도 백제 역사상으로나 당시 신라랑 비교해서도 꽤 막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당시 당나라가 애1미가 뒤지게 세서 문제였음. 당시 당나라는 동아시아 내에서는 지금의 미국 뺨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음. 백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존나 좆같네 시발. 통수 친 새끼들 복수하려고 자지 뜯으려고 했는데 신라 시발 새끼들이 짱깨 새끼 불러와서 내 자지 떼어감 시이발~ 쉽게 말해 2차 머전 때 유럽 줘패던 독궈가 미국에게 나가떨어진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한민족이라는 의식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통일 신라 때부터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ㄴ 후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가 고스란히 부활해서('후고구려', '후백제'는 근대 국사학자들이 구분하려고 임의로 지은 명칭) 신라를 정의구현 한 것을 보면 그다지... ㄴㄴ 그렇게 따지면 고려 시대에도 백제, 신라 부흥 운동 일어났었다. 실패로 끝났을 뿐이지. 뭐 그래도 어쨌거나 요새 학자들은 고려 초기까지도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정체성보다는, 각 지방의 지역적 정체성이 더 강했다고 보는 추세기는 하다.(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다 이랬다. 예를 들어 독일만 해도 독일 민족주의는 19세기에나 완성되었다.) 다만 신라가 불교 등을 통해 한민족이라는 역사 공동체 완성에 대한 불씨를 당겨놓았다는 의의는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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