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보빙사
편집하기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한국통사}} [[파일:Bobingsa.jpg]] == 개요 == [[1883년]] [[조선|우리나라]]가 최초로 [[미국|서양국가]]에 파견한 사절단. == 배경 == [[1880년]] [[수신사]]로 간 [[김홍집]]이 <[[조선책략]]>이라는 라노벨을 조선으로 가져오게 되고 이걸 읽은 [[고종(조선)|고종]]이 [[미국]]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근데 이 과정에서 [[미국]]은 외교 대사로 루시어스 푸트를 파견했고 조선도 이에 응대해서 주미조선공사를 미국에 보내야 했으나 조선에게 미국은 듣도보도 못한 나라였고 사정상 외교 대사고 뭐고 미국에 대해 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한다. == 일정 == 당연히 조선에서 미국으로 가는 직항은 없던 시절이라 1883년 7월 15일 출항하여 일본에 들렀는데 여기서 듣도보도 못한 나라에 얘들만 보냈다간 무조건 길을 잃을 것 같았는지 당시 주일미국공사의 주선으로 [[퍼시벌 로웰]]이라는 미국 [[천문학자]]와 그의 통역관인 미야오카 츠네지로를 같이 보낸다. 이에 고마웠는지 조선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퍼시벌 로웰]]에게 보빙사 서기관 겸 고문이라는 관직을 내렸다. 그렇게 8월 15일 일본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했고 태평양을 건너 9월 2일 '''드디어 최초로 조선인이 [[미국]]땅에 발을 밟는 역사적 순간이 일어났다!''' 근데 좆빠지게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워싱턴 D.C.|와싱톤]]에 도착하니까 정작 [[체스터 A. 아서|미국 대통령]]은 [[뉴욕]]에 가 있었다... 결국 사절단은 도로 거꾸로 돌아가서 [[뉴욕]]을 향했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9월 18일 [[뉴욕]]에 도착해서 [[체스터 A. 아서|천조국 황제]]가 머무르는 호텔에서 [[도게자|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파일:주인님.jpg|500px]] 사실 보빙사 일행은 서양식 예법에서는 절을 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서양의 황제]]에게는 어떻게 예법을 표해야 하는지 몰라서 의논하던 중에 천조국 머통령이 생각보다 빨리 들어와서 너무 놀라 조건반사적으로 [[청나라]] 황제에게 하듯 절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 서양식으로 악수도 하긴 했다. [[도게자|그래도 절을 한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 사절단 멤버들은 미국에서 국빈대접을 받았고 나름 중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신문물을 많이 접해보던 사람들이라 서양식 예법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윾교탈레반처럼 난동을 피우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당시 끽해야 [[자금성]]이 세상에서 제일 큰 건물인줄 알았던 조선인들이 천조국의 빌딩과 [[마천루]]를 보고 [[자동차]]와 [[기차]]를 보자 질질 싸버린다. 당시 제대로 된 포장도로 하나 없던 조선에게 천조국의 도시는 마치 외계인들이 사는 별천지와도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따. 아무튼 이렇게 보빙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백악관]]도 구경하고 박람회도 가보고 기술도 배우고 차관도 요청하고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던 중 [[체스터 A. 아서|천조국 머통령]]이 돌아갈때 타고가라고 군함 한척을 내줬는데 [[유길준]]은 남아서 미국 유학을 하기로 하고 [[홍영식]]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돌아가서 그대로 조선으로 귀국하기로 하고 [[민영익]], [[서광범]] 등등은 이 군함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거쳐 귀국하기로 한다. [[홍영식]]은 [[퍼시벌 로웰]]과 함께 조선으로 귀국했는데 이때 로웰은 조선에서 국빈대접을 받는다. 한편 유럽으로 간 [[민영익]] 일행은 조선인 최초로 세계일주를 하며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를 둘러보고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거치면서 [[인도]], [[싱가포르]], [[일본]]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온다. 참고로 [[이집트]]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피라미드]]를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유학자 출신이기에 민영익에게 피라미드는 신성한 [[왕릉]]이었고 피라미드에 들어가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 여담 == *참고로 보빙사 일행들의 기록은 조선에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는 여기 갔다온놈들이 [[갑신정변|이후 폭동을 일으켜]] 역적으로 몰려 기록말살형을 당했기 때문. 그래도 미국 신문에 보빙사 일행들의 일정이 대서특필되어서 미국 측에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민영익]]은 온건 개화파를 고수했으나 [[갑신정변|급진개화파들이 폭동을 일으켜 자신이 죽을뻔한 이후]] 친청파가 된 동시에 왕당파가 되었다. 근데 이후 친청파로 흑화해서 고종이 친러거청 정책을 밀고있다는걸 [[위안스카이]]한테 꼰질렀고 이걸 또 고종한테 들켜서 [[홍콩]]으로 망명했다. 이후 [[대한제국]]이 되자 다시 귀국하였으나 [[을사늑약]]이 맺어져서 친일내각이 세워지자 다시 [[상하이]]로 망명했고 거기서 사망한다. *[[홍영식]]은 미국의 미국의 [[우체국]] 제도에 큰 감명을 받았고 조선에도 이 우체국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조선에 귀국하자마자 [[우정국]]을 세운다. 근데 잘 알다시피 [[갑신정변|이 우정국 연회때 폭동이 일어나서...]] 홍영식도 여기에 가담했다가 역적으로 낙인찍히고 이후 광화문에 효수된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한국통사
(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