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전성기 === 비록 여러 부여족들이 부여를 떠나 변방으로 이주해 나라를 세웠지만 후한초기에는 직접 왕을 칭하고 [[숙신]]을 복속시키는등 매우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부여의 귀족이던 [[주몽]]이 애액따 시발하면서 튀고 [[압록강]]유역에 세운 나라가 [[고구려]]였고 이 고구려도 [[대무신왕]]때 부여왕 대소를 참수했지만 전쟁은 고구려가 졌다고 기록될 정도로 부여의 국력또한 존나 어마무시했다. 이 국력차이는 여러가지 이유로 부여가 좆망테크를 탈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시기 부여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재로는 길림성 장춘시 유수시에서 발굴된 유수노하심유적이 있다. 자기들의 반란군과도 같았던 [[고구려]]와는 철저한 적대관계를 맺으면서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한나라]]에 사대하고 후한말 [[공손도]]가 요동을 점령하자 왕 위구태가 공손씨의 여성과 혼인을 하여 혼인동맹을 구축했다. 하지만 [[공손연]]이 [[사마의]]에게 토벌당할 때 공손씨들에게 손절하곤 [[관구검]]이 [[고구려]]를 복날 개패듯이 두들겨 팰때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공손씨는 고구려는 패던 관구검을 퇴갤시키기도 했으나 [[사마의]]성님한테 탈탈 탈곡당해서 망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