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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 페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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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혐오|[[동로마 제국|{{색|red|자신들의 오랜숙적이었던 양놈새끼들}}]], [[이슬람 제국|{{색|red|양놈들이랑 전쟁하는사이 자기들을 날로 점령한 좆슬람새끼들}}]], [[에프탈 족|{{색|red|결국엔 털렸지만 자신들을 위기로 몰았던 오랑캐놈들}}]]|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국가}}{{찬양|[[신라|동쪽의 거대한 짱개로부터 교류 시도해 갑자기 똥꼬빨아주는 우리의 먼 동족 새끼들]],[[당나라|우리에게 문물을 주며 교류 시도하는 동쪽의 거대한 짱개 새끼들]],[[셀주크 투르크|돈벌어오면서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용병놈들]]|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국가}} {{고전유물}} [[파일:Derafsh_Kaviani.jpg]] 사산조 페르시아의 문장, Derafsh Kaviani == 개요 == 3세기 부터 7세기까지 이란, 메소포타미아, 중앙아시아에 존재한 ㅆㅅㅌㅊ 페르시아계 국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문화, 철학, 군사력이 [[페르시아]] 역사상 최고조에 다달은 왕조로 취급된다. 지들은 아케메네스처럼 되고 싶었지만 실제론 땅만 넓었지 딸랑 200년 가고 망한 아케메네스보다 2배는 오래갔다. 전성기때는 똥송인이고, [[로마 제국]]이고 다 쳐발랐다가 무슬림들에게 쳐발렸다. ㄴ사산 왕조때의 문화가 후대 이슬람 문명에도 큰 영향 끼침 ==기원== 224년 AD 로마한테 쳐발리고 골골대던 파르티아 왕조의 남서부. "아르다시르"라는 이란 남서부 (페르세폴리스 근처)의 한 귀족이 반란을 일으켜 파르티아 왕조를 정복하고, 스스로를 샤한샤, 즉 "왕중왕"으로 선포했다. 사산 왕조가 시작되었다. 원조 페르시아인들이 세운 왕조이다 보니, 사산조의 부흥에 따라 한동안 뜸했던 [[조로아스터교]]도 같이 부흥을 맞는다. ==정복== 탄생 직후, 사산조 페르시아는 미친듯한 속도로 영토를 넓혔다. 사산조는 곧바로 당시 로마가 통치하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강간해, 니시비스, 크테시폰같은 노른자땅들을 꿀꺽했다. <br> ㄴ뭔 로마가 통치하던 메소포타미아냐 [[트라야누스]] 때 한번 진출한거 빼고는 북부 지역 말고는 아르사케스 왕조 땅이었지 이걸 막기위해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집적 메소포티미아로 나섰섰으나, 약 260년, 사산조의 샤한샤 "샤푸르 1세"가 그를 사로잡아 포로로 삼은뒤 발레리아누스의 얼굴에 녹은 금을 부어버리고 그의 시체를 페르시아로 보냄으로써 로마에 빅엿을 날렸다. 이때부터 약 400년 동안 로마와의 병림픽이 시작되었다. 사산조는 궁정내분이 잦았는데, 그런 궁정내분이 있을 때마다 로마에게 수도까지 털리는 안습함을 보여 줬으나 반대로 사산조에서 유능한 군주가 집권할 때는 로마 동부를 탈탈 털었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중동에서 로마 따먹으려고 군대를 배치해놨기에, 로마도 중동 지방에 상당수의 군대가 집중되어야 해서 다른 지방에 군을 충분히 투입할수 없었다. 어쩌면 사산조 페르시아가 간접적으로 로마의 멸망을 앞당겨온셈이다. ==말기== 서로마가 고-마가 되버린후, 500년대엔 호스로 1세라는 천재 새끼가 나타났다. 호스로 1세는 "아누시루완"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페르시아어로 "불멸의 영혼"이라고도 불린다. [[비잔티움 제국]]의 사기캐 벨리사리우스가 서유럽에서 [[게르만족]] 강간할동안, 호스로 1세는 이집트, 시리아, 아나톨리아등, 사실상 비잔티움 제국의 반 이상을 일시적으로 점령한다. ㄴ그건 620년대의 호스로 2세임, 호스로 1세땐 시리아쪽만 먹음 하지만 호스로 1세의 업적은 군사적뿐만이 아니라 내정에서도 ㅆㅅㅌㅊ였다. 평소에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 허억대던 호스로 1세는, 크테시폰 근처에 군디샤푸르 아카데미라는 학원도시를 세웠다. 군디샤푸르는 6세기 지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근데 자식농사가 망했어요. 호스로 1세가 기껏 긁어모은 왕권은 내란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그 후 호스로 2세때 동로마의 내란을 이용해 이집트, 팔렌스타인, 시리아, 아나톨리아 등등을 다 처먹고 콘스탄티노플 건너편까지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페르시아의 패인이 되었는데, 일단 지중해 연안을 너무 오랜만에 점령해서 지중해쪽에 해군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였고, 너무 넓은 땅을 점령해서 군대가 다 퍼졌는데, 정작 로마의 군세를 어찌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로마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보존한 군세를 전부 모은 뒤 해군력을 이용해 페르시아의 후방인 아르메니아에 상륙해서 각종 깽판을 치고 다닌다. 당장 페르시아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현관교]]의 성지가 로마군에게 점령당하고 파괴되는 일이 벌어지자 호스로 2세는 모든 군대를 긁어모으고, 심지어 노예까지 끌어모아 반격을 시도했지만 개사기 헤라클리우스에게 떡실신만 당한다. 이렇게 되자 호스로 2세의 권위는 내핵에 도달하게 되어서 다시 내란이 벌어졌고, 그 내란을 끝낸 카바드 2세가 앙망문 천 장을 써다 헤라클리우스에게 바치면서 일단 로마와의 전쟁은 끝나게 된다. 하지만 로마에게 크게 깨진 페르시아의 혼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결국 651년부터 시작되는 같은 똥송한 동족인 [[아랍인]] [[무슬림]]들의 침략에 거짓말처럼 뭉개지기만 하면서 멸망당했다. 서로와의 전쟁에 모든것을 쏟아부은 로마와 페르시아는, 결국, 자신들의 프락치 속국들에 불과했단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했다. ==기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한샤들은 성리학만 존나 판 좇선의 왕들과는 달리 존나 똑똑했다. 샤한샤들은 직접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들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라 명령했고, 번밀레가 끝나면 직접 읽어보기도 했다. 이단으로 낙인찍힌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 페르시아로 도망쳐올때, 유럽에서 여러 철학을 들여왔고, 인도에서 의학을 들여옴으로써, 사산조 페르시아는 ㅆㅅㅌㅊ 문명이 된다. 사산조를 정복한 [[이슬람]] 칼리프국이 그당시 가장 발달한 문명이였던것만 봐도 사산조의 문명이 매우 발달했다는것을 볼수있다. 근데 망함 [[토탈 워: 아틸라]]에서도 실제 역사처럼 씹사기캐로 나온다. 백훈 없었으면 진짜 노잼됐을듯. == 쿠시나메 == {{국뽕}} {{참조|쿠시나메}} == 둘러보기 == {{이집트사}} {{메소포타미아사}}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3단원}} {{3세기}} {{4세기}} {{5세기}} {{6세기}} {{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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