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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원삼국시대]]에는 [[사벌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신라]]가 이 나라를 까부순 뒤 이곳을 공들이고 개발하여 사벌주를 세웠다. 이 사벌주는 백제 멸망 이전까지 신라 최대의 곡창지대였고 통일신라부터는 수도 방위를 위한 군사 요충지로 올라갔다. 그리고 [[경덕왕]]은 사벌주를 상주(尙州)로 개명했다. [[김헌창]]의 난과 원종·애노의 난으로 좆망했다. 하지만 [[견훤]]의 아빠 [[아자개]]가 잡으면서 어째 예토전생에 성공했지만.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서기 940년, 후삼국 시대 동안 사벌주로 고친 거 다시 상주로 만들고 안동도독부를 이곳에 두었다. 983년 고려가 행정력 확보를 위해 보낸 12목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고려가 도를 설치한 이래 도시화 이전까지 경상도의 '상'을 담당할 정도의 지역 대도시의 위치에 올랐다. 940년부터 1018년까지 이곳은 안동(정확히는 1012년에 안동대도호부로 격상)이라고 불렸으나 1018년, 지금의 [[안동]]에게 '안동'이란 이름을 빼앗겼다. 헬-쭝꿔에서 응천부라는 이름을 [[난징]]에게 뺏긴 [[허난성]] 상추시가 생각난다. 안동이란 이름을 지금 안동시에게 뺏긴 뒤에도 경상도 최대 도시로서 잘나갔다. 사실 [[대구]]에 있었던 조선시대 경상감영도 원래 상주에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상주가 불타버리면서 대구로 옮겨졌다. 경상감영 자리도 뺏기고 좆본의 철도 때문에 김천에게 경남서부 제1도시 자리도 뺏기는 굴욕을 맛봤지만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이후에도 5대 총선까진 갑, 을 선거구가 나뉘어져 있을 정도로 큰 동네였...지만 60년대 공업화에서도 외면당해서 쭉쭉 망하는 전철을 밟고 깡촌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19대 총선까진 단일 선거구라도 가지고 있었는데 20대 총선부터는 다른 동네와 병합했다. 도시가 워낙 좁아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연애가 돌림이 되기 쉽다. 그냥 상대가 자신과 헤어지면 자신의 친구와 사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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