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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적 == 일명 '''문화대통령'''. 그의 행적이란 행적은 공중파 3사 메인 뉴스인 9시에 오르내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로 아무리 수많은 그룹들이 날고기어도 공중파 9시뉴스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하여간 거물이긴 거물이다. 이 사람을 빼놓고 90년대 이후의 대중문화를 논하기가 어렵다. 팬들이나 일부 음악평론가들은 좆만한 [[트로트]]나 [[발라드]]만 있었을 시대에 [[팝]], [[록]], [[힙합]]등 [[유럽|구]][[미국|미]]선진음악을 도입하여 한국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서태지를 옹호하는게 아니라 이건 엄연한 사실이였다. 솔직히 당시 유명한 댄스,힙합,록,팝 음악이 몇개나있었냐? <del>[[들국화]]정도?</del> http://biz.heraldcorp.com/common_prog/newsprint.php?ud=20070905000157 타이거jk도 컴백홈 때문에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밝힌바있고... 당시 국내에서는 듣도보도못한 뮤직비디오를 활성화시켰다. 저작권, 초상권의 개념을 확립시켰다 .<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401123108 서태지 9천만원 소송(색연필)] 조선일보, 1994.01.12</ref><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407273108 "닮은꼴인형 무허가 시판"] 조선일보, 1994.07.27</ref> 상투적인 사랑노래였던 대중가요(이건 독재의 영향도 크지만)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시작한 가수이기도 하다. 교실이데아(주입식교육), 컴백홈(가출청소년), 인터넷 전쟁(악플), Victim(낙태), F.M Business(음악 상업화) 등. 특히 [[시대유감]]을 통해 당시 권위주의를 비판하였고, 대중가요 심의 문제를 양성화시켰다 당시 가장 큰 업적은 한국 대중음악가요 사상최초로 인세(음반 판매수익)를 받은 가수이다. 그전시대부터 잘나가던 가수들이 인세를 받지 못했는데 서태지가 회사에게 따지면서 인세를 받게되는 가수가되었고, 서태지 이후로 모든가수가 인세를 받게되었다. 80년대 통일을 노래하는 노래들이 많았지만 이게 주류로 성공한적은 없었다.(발해를 꿈꾸며) 예전에 가수들은 한번 노래를 내면 휴식기없이 계속 활동해야 하는 노오오오예 취급을 받았는데 서태지 이후로 노래를 내고 활동하다가 잠적한 후 다시 새로운 노래를 내서 활동하는, 소위 '컴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한국 아티스트들 중 멜론 명반 딱지를 가장 많이 받은(6개) 아티스트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아티스트인 [[칸예 웨스트]]도 4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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