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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카자흐스탄~이란 왕국) === 티베트 위구르 연합과의 전쟁이 끝나고, 김흥국에는 평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계속되는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국민들은 전쟁 반대 운동과 스탈린 퇴진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2098년 11월, 히틀러의 임기가 끝나고, 전쟁 반대 세력의 대표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는 전쟁보다는 국민의 행복에 우선을 두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22세기]]가 찾아왔다. 허지만 김흥국 바깥의 상황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여러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던 이란에서는 왕정을 표방하는 한 남자가 전국을 통일하고 이란 왕국을 세웠다. 그는 이란을 통일하자마자 주위의 국가들을 빠른 속도로 흡수해 갔다. 북쪽의 아제르바이잔, 동쪽의 아프가니스탄이 줄줄이 험락되었다. 그리고 그는 김흥국의 국경 지대에 있는 나라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 반대 세력이 집권하던 김흥국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결국 [[2101년]] 1월, 이란 왕국은 카자흐스탄, 그리고 북쪽의 사하 공화국과 함께 김흥국을 기습 공격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김흥국은 퇴임 이후 잠시 종적을 감췄던 스탈린을 불렀다. 전쟁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곧바로 김흥국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스탈린은 빠르게 휴식 상태에 들어가 있던 군사 시설과 무기들을 재가동했고, 폐지되었던 군사 관련 제도들도 복구시켰다. 그 사이 김흥국의 서부인 위구르 지역은 조금씩 적들에게 점령당해 갔다. 하지만 2101년 3월, 김흥국의 군사 시스템이 모두 예전의 수준으로 복구되었다. 예전의 강함을 되찾은 김흥국은 파죽지세로 카자흐스탄, 사하와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그 기세로 2101년 7월,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을 함락시켰다. 이번 전쟁의 승리로 김흥국은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을 관할하는, 유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나라가 되었다. 광활한 영토를 바탕으로 김흥국은 오랜 시간 평화를 누리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 갔다. 하지만 평화는 [[2103년]] 말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깨지게 된다. 김흥국은 영토가 너무 광활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하가는 나라였는데, 이 나라의 대통령은 오직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점이 전국 각지의 다양한 민족들을 화나게 했다. 그 결과, 김흥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주변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너무나 커져 가는 김흥국을 경계하던 주변국들은 이들 세력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주변국들은 점점 이주자들의 영향을 받아 김흥국에 상대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2110년]]에 들어서는 국경선에서 산발적으로 전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111년]] 5월, 인도네시아, 일본, 인도 연합국 간에 반 김흥국 동맹이 결성되었고, 결국 이 동맹은 2111년 8월, 김흥국을 상대로 전쟁을 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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