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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냉전]]시대때 [[미군]]과 대등할 정도로 쌨던 부대인 만큼 세계 2위에 속했다. 아니, 어찌보면 세계 1위였다. 군인수가 무려 500만명이고 이는 [[미군]], [[중국군]], [[인도군]]을 모두 합쳐야 비슷한 숫자가 나온다. 이 영향으로 소련군의 뒤를 잇는 [[러시아군]]도 세계 2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비대칭전략을 기본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이는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연합인 바르샤바 조약기구(WTO)<ref>서구권의 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대응된다.</ref> 의 회원국들과 [[북괴]],[[짱개]]등과 같은 아시아 공산권 국가들도 비대칭 전력의 영향을 받았다. 이 덕분에 전략로켓군이 따로 편제 되어있으며 이 영향으로 나온게 [[스푸트니크]]와 [[차르봄바]]이다. 특이하게도 육해공의 3군 체계가 아니라 육군/해군/공군/방공군<ref>공군 소속이 아니다. 공군과 별개로 방공군이 있었고, 자체 요격기까지 가지고 있었다.</ref>/전략로켓군에다가 총참모부 소속의 직할부대로 공수군까지 가지고 있었다. ===육군=== 역시 [[나치 독일]]의 땅크 군단과 싸운 저력 덕분에 육군은 짱짱이였다. 2차 대전 말기 기준으로 500여개 보병사단과 50여개 전차군단을 갖고 있었으며 당시 총전력은 천만명을 넘었다. 전력이 많은 덕분에 공업력 버프를 얻어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으며 [[우라 돌격]]과 기갑 웨이브를 쓸수 있게 되었다 1955년, 게오르기 주코프가 국방부장 직위를 맡으면서 핵전쟁 상황 속에서 재래식 병력의 생존은 기동성에 걸려있다고 판단, 알보병들을 전부 차량화, 기계화해버리는 비범한 개혁을 실행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러샤 곤뇽에는 순수 알보병 제대가 존재 하지 않는다. 전부 다 전차 끼고 장갑차 타도 댕기는 기동제대들 뿐. 알보병 편제가 없었기 때문에, 우라돌격? 냉전기 소련군에게는 그런거 없다. 떼칠이가 보우하는 땅끼 러쉬만이 있었을 뿐이다. 근데 냉전기 가서야 서방군에게 전력이 밀리기 시작했고 이 영향 덕분에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ㄴ냉전기에 들어서면서 서방측에 비해 육군이 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80년대에 와서야 슬슬 질적 차이가 벌어진거지. 3차 세계대전 발발시, 주독소련군을 선봉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갑집단을 유럽에 쏟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뭐 소련군의 후방지원체계가 그다지 좋았다고 보긴 어려웠다보니 그러한 기갑집단의 충격으로 달성한 전과가 장기간 유지 및 확장 될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소련군 수뇌부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단기간에 기갑집단의 충격으로 하여금 작전술적 성과를 거두고, 나아가 이것이 전략적 성공, 즉 승리로 이어지도록 하는것에 중점을 두었다. 현 북한군의 대남 교리도 이것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수 있다. 아무튼 나토군은 유사시 저러한 소련의 기갑집단이 서유럽으로 돌파해 들어와 깽판을 치는것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산물이 M270 MLRS나 아파치 헬리콥터와 서방 3세대 전차,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운용되던 전술핵이었으며, 걸프전에서 반짝 빛을 발했던 공지전 교리나, 과거 만슈타인 아저씨가 제 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선보였던 기동 방어를 도입하는등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해군=== 2차 대전 당시 소련 해군은 해군 보병<ref>해병대와 역활이 같다고 보면 된다. 현대 [[러시아군]]에도 존재. 해군육전대라고도 부른다.</ref> 빼곤 활약이 미미했고 육군보다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그래서 [[이탈리아군]]도 가진 전함을 못가졌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실은 강구트급 전함 4척을 가졌으며 수치상으로는 독일 해군 크릭스마리네보다도 압도적이였다. 다만 전형적인 내륙 국가인 소련의 특성상, 전함이 나설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2차 대전 당시에 소련이 전함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강구트급은 항구에서 짜진게 아니다. 비록 제정 러시아 시절의 구식 전함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독소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현대화 개장을 끝마쳐서 나름 쓸만한 물건이 되었고 강구트급 2번함이였던 발트 함대의 기함인 마라와 1번함인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강구트)는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몰려오는 [[독일 국방군]]을 향해 함포 사격을 퍼붓다가 각자 격침, 대파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체를 바닷물에 담근 채로 전투가 끝날때 까지 함포 사격을 계속 함으로서 '레닌그라드의 불사신'이라고 불릴정도로 활약을 했다. 유일하게 무사했던 3번함 파리쥐스카야 코뮤나도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포격 지원을 하며 요긴하게 써먹었다. 사실 [[강구트급]]은 [[제정 러시아]] 시기때 제작된 함선으로 실제로 제작할려고 했으나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취소된 '소비에츠키 소유즈' 전함을 제외하면 소련은 성립후 한동안은 신형전함을 만들 생각이 없었던 것은 맞다. 본격적으로 전함급의 군함을 만들기 시작한건 [[냉전]]기인데 이덕분에 개발된게 [[키로프급 순양전함]]이다. 배수량과 크기만 보면 순양전함이나 서방측이 풀발기 할것을 우려해서 순양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외에도 [[항공모함]]도 제작 됐는데 대부분 항공순양함이라고 불러야할 정도의 물건이 많았다. 대표적인게 [[키예프급 항공모함]],진정한 의미의 항공모함이 개발,건조된 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이 나올때 부터이다. 근데 그마저도 화력이 항공전함급의 물건이다. 소련 해군은 소련의 태생적인 지리적 한계 때문에 해군의 발전에 있어서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뭐 위와 같이 대형함을 보유한 적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각 함대간의 거리가 극도로 멀다보니 군 전략의 기본인 전력 집중 마저도 어려울 판이었다. 더욱이 대조국전쟁을 거치고 냉전기에 들어가면서 서방권과의 대형함 전력의 차는 극도로 벌어져있었다. 당장 대조국전쟁으로 나라 경제 인프라의 태반이 작살나 있는 상태에서, 이미 전력차가 극도로 벌어져 있는 대형함 전력을 서방권과 비슷한 수준으로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즉슨 대형함 만들 돈도 없고, 기껏 만들어봐자 그걸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투입하기도 힘들고, 그리고 대형함 찔끔 찔끔 만들어봤자 서방 해군력에 압살당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이에 소련 해군이 선택한 전략은 비대칭 전력의 집중적인 육성과 연안 방어 전략의 구축이었다. ===공군===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i-15같은 복엽기를 썼으나 [[천조국]]의 [[랜드리스]]스킬 덕분에 이때 와서야 MiG-3,LaGG-3,Yak-1과 같은 당시로선 최신기인 물건이 나왔다. 근데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에겐 그저 에이스 만들어 주는 야라레메카였을 뿐이다. [[냉전]]기 가서야 소련 공군의 사정은 나아졌고 MiG-15와 같은 제트기가 개발 됐으며 그당시엔 질적으로는 상대가 미 공군인 만큼 당연히 뒤쳐지나 숫적으로 [[미군]]을 훨씬 앞질렀다. 당시 소련 서기장이였던 흐루쇼프가 군축을 하고 싶어서 공군원수였던 노비코프의 대규모 공군 건설 제안을 거절했고 그덕분에 방어에 치중하여 대공미사일과 대공무기 개발에 열심이었고, 특히 대공미사일 성능은 뛰어났다. 이는 [[독소전쟁]]때 나치독일 새끼들에게 호되게 쳐 맞은 것도 개발 동기에 기여했다. 80년대 초 까지도 전투기와 요격기는 숫적 우세를 앞세우는 저성능기 위주의 항공기가 대다수였고,[[Su-27]]과 [[MiG-29]]가 개발 및 배치되기 전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어서 방공무기에만 치중했다. 방공이 특화되었던 소련군은 공군과 방공군을 분리했고 방공군에게 방공전투기 + 고고도 대공미사일, 군사위성을 담당시켰다. 반면 일반 공군에는 전투기와 전략, 전술폭격기를 운용하게 했으며 ICBM이나 중거리탄도탄 같은 경우는 전략로켓군에서 담당했다. 그 외에도 수송기는 숫자와 성능 면에서 우월한 경향을 보였는데 워낙 영토가 넓다보니 유사시 신속대응군 역할로서 공수부대의 규모와 임무가 매우 중요하였다. 그래서 냉전이 끝난 지금도 냉전기 당시의 소련 수송기는 민간화물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사용 할 정도이다. === 비대칭 === 말이 필요한가? 냉전 초기엔 미국이 핵무기 더 많았다 그런데 나중엔 소련 핵전력이 미국 핵전력을 초월했다 소련, 미국 싸우면 그때 다같이 뒤져서 어짜피 핵전력 1위고 2위고 소용없다는건 함정 상호확증파괴 앞에서는 미국이고 소련이고 나발이고 너도한방 나도한방 미국 다음으로 핵실험에 성공한 나라이다 지금 병신된 러시아도 아직 이게 남아있다 줄어들긴 했지만 일단 인류멸망시키고 남는다 천조국놈들도 이새끼들이랑 전쟁하는걸 두려워할 정도면 말 다했다 이 정신나간 새끼들이 얼마나 핵무기를 양산해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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