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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 배경 == ===피의 일요일 사건=== 교과서에 나와있듯이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봉건제+전제 군주제+농업 중심 국가였고 크림전쟁, 러일전쟁 패배로 인해서 재정파탄과 황실의 위신 실추를 맛 보아야 했다. 하지만 황제들은 백성들의 민생고를 알아주지 않았고 몇몇 황제들의 개혁정책(예: 농노해방령(1861))과 산업화 정책에도 불구, 여전히 후진적 봉건제 사회에 머물러 있었으며 선진국 진입을 위해 필수적인 도시 중산층 성장은 지지부진 했으며 대부분의 농민은 빈농 상태였다. 도시 노동자들 또한 주인니뮤가 귀족나으리 에서 자본가로 바뀐것에 불과한 상태였다. 1905년 1월 22일 기관차 공장 노동자 부당 해고에 대해 파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아직 차리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자애로우신 황제폐하께 사정을 이야기하면 해결해 주실거라고 믿고 결국 빵을 달라며 거리로 나섰으나 정부 측에선 총을 투다다당 쏘았으니 이게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참고로 포템킨 선상반란 사건도 동년에 일어났다. 이 사건의 여파로 헌법을 제정하고 두마(의회)를 개설했는데 이는 좆본제국(1890년 헌법 제정, 제국의회 개회)보다도 늦은 것이었으니 당시 러시아 제국의 후진성을 짐작케 해준다. ===제1차대전 참전=== 사실상 러시아 제국은 이미 속빈 강정에 빈사 상태였으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1차대전에 참전한다. 거기다가 황제는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무능했으며 스스로 사령관을 자처하고 나서며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게다가 황후또한 적국 독일 출신에다가 요승 라스푸틴을 전적으로 신뢰해 그의 말만 듣고 작전을 건의하고 또 황제는 이걸 곧이곧대로 작전에 반영하는 병크를 일으키고 말아먹는다. 이로서 황실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으며, 국민들의 민생고 또한 극에 달하고 군인들의 사기저하와 불만또한 극에 달한다. ===러시아 2월혁명(3월혁명)=== 하지만 덩치값을 못하며 동맹군에게 쳐발렸고 국가 재정또한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 결국 배급제 하에서 밀가루와 우유 배급조차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부녀자들이 자녀들에게 줄 우유를 배급하라고 수도 페트로 그라드에 나서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파업 노동자들의 연대 공투로 발전하여 전쟁 중지를 요구하며 부녀자들의 시위는 혁명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이에 황제는 군부에 진압을 명령했으나 이미 러시아 인민들은 [[로마노프 왕조]]의 지배를 더이상 받아들이지 안으려 했고 결국 병사들 마저도 정부에 등을 돌려 인민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페트로그라드 노동사 병사 평의회''' 즉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결성되었다. '소비에트' 자체가 러시아어로 평의회란 뜻이다. ===황제 퇴위와 케렌스키 임시정부 수립=== 결국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책임을 통감하고 퇴위를 선언, 제위를 동생인 미하일 대공에게 양위하겠다고 발표하나, 미하일 대공이 제위 계승을 거부함으로서 러시아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러시아 정부의 수반은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로서, 이 정권은 사회-사민주의자 즉 멘셰비키 연립 정부였다. 하지만 케렌스키 정부는 전쟁 계속을 선언(케렌스키 왈, "지금까지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매몰비용도 모르는 한심한 놈임을 알 수 있다.)함으로서, 민중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레닌의 복귀=== 한편, 러시아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간파한 독일제국은, 전쟁 중지를 외치는 레닌에 주목하여 레닌의 귀국을 알선하면서, 전후 처리문제를 미리 협의한다. 독일제국은 레닌을 위해 특별 방탄열차까지 제공해 망명지 스위스에서 레닌의 귀국(스위스->독일->스웨덴->핀란드->페트로그라드)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레닌이 러시아에 도착한 날, 민중들은 환호했다. ===러시아 10월혁명(볼셰비키 쿠데타)===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함으로서 결국 경제 파탄을 야기하고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한편 반대급부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지지를 얻는다. 사실 볼셰비키란 말은 러시아어로 다수파란 의미인데, 실제론 수적으론 멘셰비키에게 밀렸다고 한다. 그러나 임정의 실정으로 점차 볼셰비키는 전국적 지지를 확보하게 이른다. 1917년 적군의 지도자 레프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혁명당원 1000명을 이끌고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리고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썩은 문짝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때 케렌스키는 여장을 하고 미 대사 부인으로 가장해 겨우 탈출에 성공, 미국에 망명해 천수(1970년까지)를 누리다 갔다. 그리고 레닌은 4월 테제를 발표, 이것이 볼셰비키의 강령이 되었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라는 구호대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로서 세계 최초로 마르크스 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캅카스 3개 공화국이 회원국인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 소비에트 연방이 결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나라를 뒤엎어버리자고 들고 일어선게 소비에트 혁명인데 왕 때려치고 군중에게 나라를 돌려주자 했으나 결과적으론 지들이 들어찼다... 어이무... :*마! 프로레타리아 독재 모르나?! ===적백내전=== 레닌은 사전약속대로 비난과 불이익을 각오하고 연합국에서 탈퇴, 전격적으로 독일과 강화하여 방대한 제정 러시아의 영토를 상실한다(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하지만 레닌도 레닌대로의 구상으로, 독일은 어차피 곧 연합국에게 망할나라이니 훗날을 도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하루아침에 천명의 볼셰비키 따위에게 자신들의 아름다운 러시아가 빨갱이 세상이 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구귀족과 러시아 제국 군인들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며 백군을 결성하고 말았으며 러시아가 막판에 통수를 친 얌체짓과, 세계최초의 공산국가 수립이라는 두려움에 부들부들한 제국주의 열강 세력은, 백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직접 참전도 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인데 영국은 전함덕후 답게 전함을 보내기도 했고, 좆본은 연해주로 쳐들어가 군사를 진주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국방장관 레프 트로츠키가 적군을 결성하여 뜻있는 제정 러시아 시절 장교들까지 받아들이기도 했고 결국 이 와중에 니콜라이 2세 가족은 백군이 이들을 구출하여 제정을 복귀시키려 한다는 정보때문에 처형시킨뒤 소각하고 파묻어 버렸다. 시신은 1990년대 초에 옐친시기에 겨우 발굴 되었고 그 결과 생존한 왕자와 공주라고 주장하던 사기꾼들을 데꿀멍 시켰으며, 나라 말아먹은 암군이지만 최후가 비참하다고 황제 일가족은 정교회 성인으로 시성되기도 하였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간섭군과 백군까지 쳐부신 볼셰비키들은 몽골까지 접수하여 사상 2번째 공산국가겸 소련 첫번째 위성국을 만들고 1922년에 정식으로 소비에트 연방 체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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