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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이 열리는 이유 == 원래 주자가 없을때는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 첸쟙도 던지고 커브도 던지고 근데 주자가 쌓였다? 그럼 직커따리 직커따~ 그리고 원래 커터는 몸쪽승부에 유리한 구종인데 위기만 되면 바깥쪽만 주구장창 판다. 그래서 극장이 열린다. 투쿠폼을 바꿨는데 극장개봉하고 위기때가 되면 옛날처럼 점프하면서 던진다. 그럼 힘빠져서 더 뚜들겨 맞는다. 최근에 폐막됐다. 2018년 엘꼴라시코에서 다시 개막하였다. === '''2010 시즌''' === 2009년 말에 제대한 이후 바뀐 팀 [[넥센 히어로즈]]에 복귀하여 4년만에 1군에 합류하였다. 2010 시즌 시작 전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 도중 부상이 재발하여 또 다시 전력에서 이탈한 [[조용준]]을 대신하여 마무리 보직을 맡게 됐다. 이때만 해도 땜빵일 줄 알았는데 조용준이 그대로 은퇴해버리며 여자저차 주전 마무리가 됨. [[조용준]]이 조기 귀국한 뒤 [[김시진|빙시진]]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손승락|손퇴물]]이 경찰청에서 제대한 후 제구력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물론 본인의 감독 실력은 좋아지지 않았다. 보직을 맡은 첫 해부터 마무리 투수 중 가장 적은 블론 세이브(3개)를 기록했고 최다 구원 1·2위를 다투는 등 구원 투수 중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10년 3월 27일 1군 복귀전이자 사직야구장에서 열렸던 개막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마무리로 등판하여 1과 1/3이닝 동안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 해 9월 24일에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6세이브를 기록하여 시즌 막판 '''불미스러운 음주운전 사건'''으로 두산 전력에서 이탈한 [[이용찬]]을 제치고 구원 1위를 확정하였다. 그가 따낸 구원 타이틀은 그의 프로 입문 첫 개인 타이틀임은 물론, 2008년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 구단에서 처음으로 나온 소속 선수 타이틀이기도 하다. 시즌 후 그도 [[강정호]]와 함께 트레이드설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그의 뛰어난 투구를 높이 평가한 [[김시진|빙시진]] 감독이 그를 선발 투수로 전환하기로 하고 대신 [[고원준]]을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하여 마무리 투수로 [[이정훈]]을 영입하게 되면서 트레이드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결국 꼴데로 돌고 돌아 오셨다. ===2011년 시즌=== 2011시즌 개막 직전 스프링캠프에서 선발 전환을 시도했으나, 스프링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보직 전환에 실패하고 강진의 2군 캠프로 내려가 재활했다. 이후 그는 마무리 보직으로 완전히 고정된다. 2011시즌 개막 후 부상으로 그가 1군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잠시 [[송신영]]이 마무리 보직을 맡게 된다. 그리고 신영언니는 꽤 잘 막아줬다. 2011년 4월 25일 뒤늦게 1군에 합류한 후 4월 29일 LG전에서 팀이 3-8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라 1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며 성공적인 복귀전을 가진다. 이후 5월 27일 목동 LG전에서 8회초 4-3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2이닝 무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2011 시즌 첫 세이브를 수확한다. 그 후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보이며 총 17세이브를 수확한다. 타이틀 홀더였던 2010년에 비하여 시즌 초반의 부상 및 블론 세이브가 늘어나는 바람에 세이브가 감소한 대신 1점대로 평균 자책점을 끌어내렸다. [[심수창]]의 연패 탈출 때 세이브를 거두면서 연패 탈출에 도움을 주었다. 이때 세레모니 씹간지. ===2012년 시즌=== 시즌 초반에는 살짝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마무리 전향 이후 그 해 33세이브를 기록하여 단일 시즌 30세이브대를 최초로 돌파했다. 5블론인데 이게 전부 팀이 4강 싸움할때 터진건 비밀. 1억 8천만 원에서 8천만 원이 오른 2억 6천만 원에 연봉 계약을 완료했다. 53경기 3승 2패 33세이브 5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2.15점의 기록만 보면 무난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나름 괜찮긴 했는데 이때부터 선두타자를 출루시키는 능력이 급속도로 늘어나서 승락극장의 서막을 알림. ===2013년 시즌===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A대표팀에 처음으로 합류하였다. 이 해부터 본격적으로 8승락 = 좆망 공식이 생겼고 승락극장이 절천리에 영업되었다. 2013년 7월 9일 목동 롯데전에서 1.2이닝을 구원하며 2010년 마무리로 전업한 이래 3년만에 개인 통산 100세이브(238경기)를 달성하였다. 2013년 9월 14일 문학 SK전에서 세이브를 하나 추가하면서 마무리 전업 후 처음으로 40세이브대를 돌파하는 동시에 [[정명원]], [[진필중]], [[오승환]]에 이어 4번째로 ''''한 시즌 40세이브''''를 달성하였고, 이후 세이브를 추가해 46세이브를 달성하여 다시한번 세이브왕을 차지했고 [[오승환]]에 이어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2위를 달성했다. 이해의 기록으로 좆크보 마무리 계보에 한자리 껴 들수 있게 되었다. 2013년 두산과의 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4이닝 역투를 보여 주기도 했다. [[박병호]]가 동점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끌고 가던 상황에서 보여준 혼신의 역투였다. 하지만 그가 내려간후 [[강윤구]]가 올라오게 되고... [[파일:5d8d1.jpg]] 그렇게 히어로즈는 멸망했다. 2001년의 [[신윤호]](당시 [[LG 트윈스]]) 이후 마무리 투수로는 12년만에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마무리로 전업한 투수로는 1994년 [[정명원]](당시 [[태평양 돌핀스]])이후 처음으로 수상했다. 좆크보 마무리감 참 없기는 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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