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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덕국 통수 === 고구려 부흥운동을 하던 고구려 왕족 안승은 신라에 항복하면서 신라의 울타리가 될 테니 국가를 유지시킬 것을 요청한다. 이에 신라에서는 승낙하면서 안승을 보덕국 국왕으로 임명하고 원래 백제 땅이었던 지금의 [[익산]] 금마면일대인 금마저를 땅으로 줬다. 이는 고구려 지배층을 이용해 백제 유민의 반신라 감정을 희석시키고 통제시키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백제 지방도 안정되고 보덕국이 쓸모 없다고 생각한 신라는 안승에게 김씨 성을 주고 진골로 만든 뒤 경주에서 살게 한다. 노골적으로 보덕국을 없애려 하니까 보덕국에서 반발이 있었는데 신라는 이를 이용해 보덕국을 없애버린다. 이후 기록에 안승은 나오지 않지만, 684년에 안승의 조카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안승의 최후는 알 수 없지만 그를 조상으로 여기는 횡성고씨가 존재해서 직계후손이 없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완전히 좆망한 서민성씨라서 메이저인 제주도 고씨한테 흡수당했다. 김씨 성을 받아서 고안승이 아니라 김안승이 되었기 때문. 삼국사기에서 안승 이후의 신라 분량에서 김씨들이 한둘인가? 대략 멸망할 때까지 200년 정도 남았는데, 나오는 김씨만 왕을 제외해도 엄청 나온다. 제일 많이 나오는게 김씨고 그 다음이 박씨니까. 고씨 성을 계속 유지했으면, 삼국사기에서 유추하기가 그나마 쉬웠을 텐데, 그게 아닌지라... 참고로 보덕국 자체도 이간질해서 안승과 검모잠이 지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진지 빨자면 멸망한 나라의 유민들을 포섭하기 위해 괴뢰국으로 만들기->점차 흡수해버리기 테크를 밟는 것은 어디에나 흔한 일이었으며 안승과 검모잠은 670년에 안승이 검모잠 조지고 나서 신라에 망명하고 다시 674년에 보덕국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신라는 대체 무슨 수로 보덕국 만들어지기 한참전에 뒈진 검모잠을 안승과 싸우게 만들어 보덕국을 씹창낸걸까? 네크로맨서라도 있었나보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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