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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 안성천 동쪽의 양성면, 공도읍, 원곡면지역은 [[양성군]]이었고 칠장산과 ??산동쪽의 죽산면, 삼죽면, 이죽면, 보개면 북쪽지역은 [[죽산군]], 고삼면지역은 [[양지군]]에 속했다. === 고대 === 고구려, 백제때는 나혜홀이라 불렀고 신라가 먹은뒤로는 백성군이라 불렀다. 신라의 킬링머신이자 수능 고대국어에서 감초처럼 나오는 [[소나]]의 탄생지말고는 딱히 중요한건 없다. 통일신라때는 안성천건너의 양성군과 평지로 연결된 직산군지역을 속현으로 두었다. 오히려 옆동네인 죽산이 [[후삼국시대]]한정으로 [[궁예]]가 지냈던 칠장사가 있고 [[비뇌성 전투]]<ref>아직까진 비뇌성에 대한 연구자료가 그렇게 많진 않아서 추정만 하고 있다.</ref> 외에 후삼국시기 주요 전장인지라 인지도가 더 높았다. === 중세 === {{흥한 시즌}} ㄴ조선후기 한정 [[고려]]시기에는 現 [[천안시]] 풍세면지역에 설치된 천안부의 속현/속군인 깡촌이 되었다. 조선후기 안성은 중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지라 전국 3대 장시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대성했다는 안성장시가 열렸고 덕분에 리즈시절을 맞았다.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이 안성에서 제사때 쓸 감을 사재기했더니 전국의 양반님들이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감이 없어서 멘붕하는 일이 벌어질만도 했던 곳이다. === 근대 === 1895년 23부제를 실시하면서 공주부 안성군이 되었다. 사실 당시기준으로 안성은 서쪽, 남서쪽을 제외하면 모두 산으로 막혀있는 고립적인 지형이었기에 평지에서 수원 찍고 과천찍으면<ref>구한말기준으로 지금의 [[안양시]]지역과 [[서초구]]지역은 대부분이 과천에 속했다.</ref> 바로 서울로 갈 수 있는 평택에 철도가 세워지면서 좆-망했다. 그리고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안성천 건너에 있던 양성군과 산건너에 있던 죽산군남부<ref>백암면 남쪽과 북쪽으로 산으로 막혀서 생활권이 분리되있었다.</ref> 를 통폐합했다. 이후 1960년대에 양지군이 용인에 통폐합되면서 넘어온 고삼면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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