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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치연혁 == [[원산]]지역에 살던 [[동예]]와 이웃한 심산 유곡지대라 알려진건 없지만 [[고인돌]]이 발견되긴 했다. 거기에서 끝난게 문제지. [[낙랑군]] 누방현(鏤方縣)에 속했다가 [[미천왕]]대 고구려땅이 되었다. 하지만 고구려 좆망하고 같이 좆망. [[고려]]가 [[평양]]을 수복한 뒤 북진정책을 실시하면서 938년 동양면에 양암성(陽巖城), 983년에 양덕읍에 수덕성(樹德城)을 쌓아 군사요새로 성장시켰다. [[여요전쟁]]이후 이군근처에 북계관성이 새로이 축성되었다. 요나라 말 [[여진족]]과 막고라를 평치게 되면서 본군에 둔이 설치되었고 토성진(兎城鎭, 現 오강면)에 별장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거유(車踰, 現 쌍룡면)에 소모별장(召募別將)일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 토성진은 첨사가 주둔하게 되었다. 1396년 양암성 + 수덕진 = 양덕현이 되었고 감무가 파견되었다. 이때는 양암성에 치소가 설치되었지만 1635년부터 1638년까지 [[인좆]]에 의해 양덕읍으로 옮겨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1년 군청이 동양면에서 양덕면(당시 구룡면)으로 옮겨졌고 1941년 양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 후반 ~ [[소련군정]] ~ [[북괴]]수립초기까지 평원선이 만들어짐에 따라 관서와 관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때문에 [[6.25 전쟁]]당시 중요한 군사요충지가 되었지만 서부전선의 군머는 [[청천강 전투]]때 멘탈이 쿠크다스가 되서 지킬수 있는 꿀땅도 못지키고 빤쓰런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중공군이 별탈없이 수복했다. 그리고 [[중공군]]은 이지역을 기반으로 평원선 중간에 있는 [[고원군]] 수동읍을 쳐먹고 [[원산]]을 점령했다. 북괴가 재수복한 뒤,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쌍룡면, 오강면, 화촌면이 [[성천군]] [[성천군#대구면|대구면]]과 함께 신양군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북괴치하에서 양덕군내에 노동교화소가 신설되었다. 2006년 양덕, 신양전체가 대홍수로 큰 인명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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